‘문재인정부 교육 공약의 설계자’ ‘혁신 교육의 아이콘’ ‘진보교육감들의 맏형’ 등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출범한 김상곤호(號).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 정시모집으로 30% 이상 뽑는 새 대입 제도를 내놓고 초라하게 막 내리게 됐다. 김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진보교육계로부터 욕먹을 각오하고 청와대의 정시 확대 요구를 수용했으나 경질되는 수모를 겪었다. 교육계 일각에선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했다며 동정론이 고개를 들었다. 교육부 장관이란 대체 어떤 자리일까.
관료·정치인 줄줄이 실패
직을 순탄하게 수행하고 내려온 인물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박근혜정부 첫 교육부 수장인 서남수 전 장관도 그랬다. 서 전 장관은 교육부 관료 출신 1호로 후배들로부터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노무현정부 때 교육 차관을 지내고도 박근혜정부 장관에 발탁돼 의외란 평가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보수 코드와 다른 정책으로 삐걱거렸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선발권을 없애려다 무효화한 게 대표적이다. 세월호 참사 때는 ‘황제라면’ 논란으로 체면을 구기더니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튕겨져 나갔다.
황우여 전 장관은 교육부 장관직이 공직의 무덤이 됐다. 5선에 여당 대표를 역임한 거물급 교육부 장관 등장에 이목이 쏠렸다. 그는 장관직에 오르자마자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전환해 선이 굵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당시 여권과 갈등을 빚었다. 황 전 장관이 국정화 추진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자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직접 경질을 언급하기도 했다. 결국 20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연수갑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고 험지인 인천 서을에 나갔다가 낙선했다.
황 전 장관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준식 전 장관은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깜짝 발탁됐다. 청와대가 다루기 쉬운 인물을 앉혔다는 해석도 없지 않았다. 그 역시 국정농단 사태 와중에 역사 교과서로 홍역을 치렀다. 이 전 장관은 박근혜정부가 식물 상태가 된 뒤에도 국정 역사 교과서를 폐기하지 않고 버텨 큰 비판을 받았다. 교육부 직원 중에는 이 전 장관이 국정화를 조기에 중단했다면 교육부 폐지론까지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이도 있다.
대통령의 아바타
역대 교육부 장관들을 연구한 광주교대 박남기 교수는 교육부 장관을 ‘대통령의 아바타’라고 표현했다. 논문 ‘교육부 장관 리더십 탐색 연구’에서 “직을 유지하려면 (청와대) 조정에 응해야 한다. 따르지 않으면 폐기 경고가 들어오게 되고 스위치가 꺼진다”며 “국민들은 아바타만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교체를 요구하고 대통령은 희생 제물로 활용하며 위기를 넘기곤 했다”고 설명했다.
김상곤 전 장관이 전형적인 케이스다. 김 전 장관은 취임사에서 “정책을 추진할 때 이행할 수 없는 100개 이유보다 이행 가능한 단 1개의 가능성을 찾고 또 찾아 해결해야” “소통과 여론을 빙자한 두루뭉술한 눈가림용 정책을 개혁의 이름으로 포장해선 안 된다”고 일갈했다. 김 전 장관의 무게감을 고려했을 때 대통령 아바타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 전 장관은 경질에 따른 서운한 감정을 문재인 대통령이 마련한 만찬(지난달 30일)에 불참하는 것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유은혜 후보자는 어떨까. 박 교수 연구에서는 교육부 장관 유형을 크게 관리자형, 전문가형, 정치가형으로 구분했다(표 참조). 관리자형은 서남수 이준식, 전문가형은 문용린 김신일, 정치가형은 이해찬 황우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유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고 큰 이변이 없다면 차기 총선까지 직을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래서 정치가형과 관리자형의 중간 성향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1년 교육 파트는 문 대통령 지지율을 깎아먹는 요소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유 후보자가 장관 지명 직후 “(교육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안정에 방점을 찍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박 교수는 “교육과 정치는 행성과 태양 관계와 유사하다. 너무 가까우면 타 죽고 멀면 얼어 죽는다. 정치가 너무 깊이 관여하면 정치 수단으로 전락하고, 그 반대의 경우 (지원이 줄어) 교육 발전이 지체된다. 그래서 고도의 균형감각 있는 장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거물들도 예외 없었다, ‘공직의 무덤’ 교육부 장관, 유은혜는 어떨까
입력 2018-09-16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