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피임약 약국에서 사게해달라… 청와대 청원게시판 북적

입력 2018-09-12 20:42 수정 2018-09-12 20:47

사후(응급)피임약을 약국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낙태 수술 의사를 처벌하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전면 파업을 선언했다. 사실상 모든 낙태가 중단된 상황이 되니 “낙태 예방을 위한 현실적 대안을 열어 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보면 ‘사후피임약을 약국에서 구매 가능하도록 만들어 달라’는 청원에 3000여 명이 참여해 주목된다. 사후피임약은 수정란이 자궁내막에 착상하는 것을 방해해 임신을 막는 의약품이다. 성관계 후 12시간 이내에 복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95%)가 좋고, 늦어도 72시간 내에는 복용해야 효과(42%)를 볼 수 있다. 다만,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구매할 수 있다. 앞서 지난 2012∼2016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검토했지만 의료, 종교계 등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해당 청원자는 “사후피임약이 대중화되지 않고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은 여성을 임신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닌, 정부가 판단 하에 임신을 관장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낙태가 죄라면 그 전에 방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있어야 하며, 사후피임약을 통해 여성에게 출산에 대한 선택과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목소리에 대한약사회는 공감의 뜻을 밝혔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사실상 응급상황에서 빨리 먹어야 하는 사후피임약을 가지고 의사가 진료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하는 추세다. 실질적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면 약국에서 접근하도록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약사회와 의견을 같이했다. 경실련 사회정책팀 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음성적으로 시행되던 낙태조차 막겠다고 한다. 여성이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런 요구가 나왔다고 본다”며 “사후피임약의 경우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할 이유가 없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시행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면 의료계는 난색을 표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 김동석 회장은 “사후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하자는 것은 낙태 문제의 논점에서 벗어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의사를 통해 처방하도록 정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며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면)환자들이 오남용할 가능성이 있다. 내성이 생겨 정작 필요할 때 효과가 감소하거나 생리불순 등 합병증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사후피임약 관련 검토 계획은 따로 없다”고 밝혔다. 김상봉 식약처 의약품정책과장은 “지난 2016년 일반약 전환 재분류를 검토한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충분한 사회적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고 2년도 채 안됐다”며 “일반약 전환 요구가 나올 때마다 재검토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김 과장은 최근 일각의 낙태약 ‘미프진’ 허용 요구와 관련해서도 “미프진은 현재까지 허가 신청조차 없다. 또 현행 법률상 ‘약물에 의한 낙태’는 법 위반 사항이기 때문에 허가 신청이 오더라도 국내에서 허용될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전미옥 쿠키뉴스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