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장로 내외를 남산 밑에 있는 외교구락부로 초청해 점심을 대접했다. 힘들게 입을 열었다. “장로님, 건축비가 없습니다. 2억원을 좀 빌려 주십시오. 교회 건축하고 이자까지 갚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빌려 주십시오.”
막상 말을 꺼냈지만 최 장로에겐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50평이 1600만원 할 때였다. 게다가 1차 오일쇼크로 기업의 자금 결제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기도해 보겠습니다.” 담보도 없이 내 이름 석 자만 믿고 돈을 빌려 달라는 부탁이었다. 최 장로와 헤어지는데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최 장로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목사님, 우선 급한 대로 1억원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아니, 정말입니까. 어떻게 하루도 안 돼 결단하셨습니까.” “저희 집사람이 간밤에 꿈을 꿨는데, 글쎄 목사님이 제3한강교에서 고기를 잡는데 수없이 물고기를 낚더랍니다. 큰 교회가 될 꿈이라며 도와주자고 하네요.” 1억원 수표를 받았다. 동그라미가 그렇게 많은 수표는 평생 처음 봤다.
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빌린 2억원은 금방 바닥이 나고 말았다. 쏟아부어야 할 돈은 끝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철골 파동’이 일어났다. 지하철 건설이 한창인 때였기에 나라에서도 철골이 부족해 난리가 났다. 철골 문제를 해결하니 이번에는 ‘레미콘 파동’이 일어났다. 마치 세상이 교회 건축을 막으려 작정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콘크리트를 붓던 날을 잊지 못한다. 당시 나는 체력도 정신도 고갈돼 있었다. 이튿날 3500만원을 입금해야 하는데 더 이상 돈을 끌어올 데가 없었다. 넋이 나간 기분이랄까. 물끄러미 콘크리트를 쏟아붓는 광경을 보며 이런 생각까지 했다. ‘에밀레종을 만들면서 쇳물을 녹일 때 어린애를 던져 넣었다고 하지. 내가 녹아서 이 교회가 세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에는 금식 기도를 하면 정신이 더 맑아졌는데 이번에는 과로가 겹쳐서인지 그만 정신을 잃고 혼절하고 말았다. 그러자 온 교인이 들고일어났다. 담임목사가 기도하다 쓰러졌다고 하니 성도들이 새로운 각오와 의지를 불태웠다. 지하 기도실에서 24시간 연속 기도회가 시작됐다.
1979년 12월 정문과 후문 공사가 완료되고 공정의 99%가 진행됐다. 전체 건축비용이 21억6000만원이 든 공사였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135채를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그해 12월 16일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입당 예배의 날이 밝았다. 성전을 새로 짓기로 결의하고 건축위원회가 출범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 큰 공간이 과연 찰 것인가’에 있었다. 예배당을 너무 크게 짓는 것 아니냐고, 그 큰 예배당이 차겠느냐고 부정적인 말들이 난무했다.
모든 우려는 입당예배 때 순식간에 사라졌다. 불가능이 실현된 것이다. 4000여 좌석이 꽉 찼다. 세계 제일의 감리교회가 되어 선교 봉사의 주역이 되자는 우리의 첫 비전이 성취된 것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