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넷마블에서 게임을 개발하던 젊은 직원 두 명이 연달아 돌연사했다. 이 중 한 명은 지난해 산업재해(과로사)로 인정받았다. 게임업계 종사자 사이에서는 “그동안 개같이 일했다” “터질 게 터진 것”이란 얘기가 돌았다. 그로부터 2년 만인 지난 3일 업계 1호 노동조합인 넥슨 노조가 출범했다. 이번엔 “우리 업계가 처음으로 자랑스럽다”는 말이 나왔다. 노조 설립을 주도한 배수찬(33)씨를 지난 5일 경기도 성남 넥슨 본사 근처에서 만났다.
배씨는 “게임업계의 장시간 근로는 이미 발화점을 넘어섰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과로사와 자살이 끊이지 않는 게임업계를 두고 “사실상 근로기준법 사각지대”라고 표현했다. 마감을 앞두고 최소한의 수면시간조차 포기한 채 일하는 ‘크런치 모드’, 그러다 프로젝트가 엎어지면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는 고용 불안정성, 그럼에도 일한 만큼 받지 못하는 포괄임금제 문제가 수십년간 지속됐다는 것이다. 배씨는 “넷마블에서 사고가 터지면서 이런 저런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변한 건 없었다”며 “총대 멜 사람이 필요하다면 내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몇 해 전 넥슨에서도 한 직원이 일하다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다.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배씨는 “이러다 모두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또한 매일 자정 가까이 퇴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하드 워커(hard worker)’였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앞두고 노사위원회 활동을 하면서는 노조의 필요성을 좀 더 절실히 느꼈다. 배씨는 “우리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려면 공식적이고 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배씨는 “이틀 만에 벌써 500명 넘게 가입신청서를 냈다”고 자랑했다. 넥슨 직원이 4000여명인 걸 감안하면 폭발적인 반응이다. 가입신청자 중에는 ‘아이 아빠’의 비중이 크다고 한다. 배씨는 “잃을 것, 지켜야 할 것이 더 많은 사람일수록 노조가 더 절실한 것 아닌가 싶다”며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배씨는 당분간 ‘노조 할 권리’ 확보에 집중할 생각이다. 배씨가 노조 지회장을 맡고 있긴 하지만 전임이 아니고 사무실도 아직 없다. 넥슨 노조는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산하 지회로 출범했다. 배씨는 “포괄임금제를 폐지해야 하고 무늬만 정규직인 현실도 바꿔야 한다”면서도 “일단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노조를 만드는 게 최우선적 과제”라고 말했다. 동료 직원을 향해서는 “우리 모두를 위한 투자, 미래에 대한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가입해주면 좋겠다”며 “이곳의 변화가 업계 전반으로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보자”고 했다.
성남=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인터뷰] 게임업계 첫 노조 위원장 “동료 쓰러지는 것 보며 나도 죽겠다 생각”
입력 2018-09-0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