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법원의 불법 ‘깨알 지시’ “비자금, 현금으로 소액 인출”

입력 2018-09-06 18:37 수정 2018-09-06 21:31
‘양승태 법원행정처’ 사법 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6일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예산담당관실, 재무담당관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의 현재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고법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별관에서 압수한 물품을 옮기고 있다. 뉴시스

“의심을 피하기 위해 예산을 현금으로 소액 분할 인출하라.” “지출 결의서도 공보관이 필수 기재·서명해야 한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가 각급 법원 공보관실 예산을 빼돌려 3억5000만원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깨알 지시’를 각급 법원에 내린 것으로 6일 확인됐다. 그간 대법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거듭 기각했던 법원도 이 같은 정황이 드러나자 결국 영장을 발부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불법 비자금 조성 혐의로 서울 서초구 대법원 건물에 있는 법원행정처 예산담당관실과 재무담당관실을 전격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이 대법원 건물에서 행정처 문건을 압수하는 동시에 사무실 수색까지 벌인 것은 처음이다.

앞서 행정처는 상고법원 추진 과정에서 고위 법관에게 격려금·대외활동비가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기획재정부에 3억5000만원가량의 ‘각급법원공보관실운영비’ 예산을 2014년 새로 청구했다. 각급 법원 공보관실은 허위증빙서류를 작성해 2015년 배정된 이 예산을 전액 현금으로 인출한 뒤 행정처에 인편으로 ‘배달’했다.

박병대 당시 행정처장(대법관)은 그해 3월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 주재로 전남 여수 엠블호텔에서 열린 전국법원장 회의에서 각급 법원장에게 많게는 2400만원에서 적게는 1100만원의 비자금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는 박 전 처장을 포함해 양 전 대법원장, 전국 고등법원장, 특허법원장, 지방법원장 등이 있었다고 한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것은 비자금 조성 과정의 불법성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행정처는 비자금을 만들면서 “예산을 청구할 때 일선 공보판사가 직접 서명한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예산을 (행정처에서) 인편으로 수령한 다음 (행정처) 공보법관이 수령했다는 서명 날인을 하라”는 주문도 했다. 이는 검찰이 행정처의 임의제출 등을 통해 확보한 문건에 적혀 있다. 허위증빙서류를 작성하는 방법과 감사원 등의 의심을 피하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안내한 것이어서 범죄 의도가 명백하다고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다만 비자금 조성을 주도한 박 전 처장과 강형주 전 행정처 차장, 임종헌 전 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 전직 법관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끝내 기각됐다. 법원은 재판 검토 보고서 등 대법원 내부 기밀 자료를 불법 유출했다는 의심을 받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도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검찰은 “재판의 본질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 등의 대법원 기밀 자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은 계속 기각했다”며 “같은 성격의 유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청구한 영장을 기각한 것은 불법 상태를 용인하고 증거인멸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검찰은 대법원에 유출 기밀자료의 불법 반출에 대해 고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