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때 화재 위험 알고도 무리한 진압

입력 2018-09-05 18:33
용산참사 유가족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용산참사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경찰이 화재 발생 위험을 알면서도 안전대책 없이 무리하게 진압 작전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5일 이 같은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경찰청에 당시 숨진 경찰특공대원과 철거민들에 대한 사과 등을 권고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철거민 32명이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서울 용산구 남일당 빌딩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을 시작한 2009년 1월 19일 경찰은 조기 진압과 경찰특공대 투입을 결정했다. 작전계획서에는 망루에 시너 등 위험물질이 많고 농성자들이 분신·자해 등을 할 우려가 있다며 안전을 위해 300t 규모의 크레인 2대와 컨테이너, 에어매트, 소방차 등 152개 장비를 동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진압 작전 당일인 20일 크레인은 100t 규모 1대만 동원됐고 에어매트는 설치되지 않았다. 시너 등 유류로 인한 화재 진압용 화학소방차 역시 없었다. 당시 경찰특공대 제대장이 서울청 경비계장 등에 작전 연기를 건의했지만 거절당했다.

특공대가 옥상에 진입하자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하는 과정에서 1차 화재가 발생했다. 또 경찰들이 탄 컨테이너와 충돌한 망루가 부서지며 안에 있던 시너 등 인화성 물질이 흘러내렸다. 인화성 유증기가 가득 찼음에도 경찰 지휘부는 특공대를 다시 진입시켰고 결국 2차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숨지고 양측 21명이 다쳤다. 유남영 진상조사위원장은 “2차 진입 강행은 특공대원과 농성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경찰은 사건 발생 후 전국 사이버 수사요원 900명을 동원해 용산참사와 관련한 인터넷 여론을 분석하고 경찰 비판 글에 반박 글을 올리도록 조치했다.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의 지시가 발단이 됐다.

당시 이명박정부 청와대 행정관은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사건의 파장을 막고자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위는 경찰이 실제 이 지시를 이행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 위원장은 “경찰 지휘부의 잘못된 지휘로 순직한 경찰특공대원과 사망한 철거민들에게 사과하고 경찰이 조직적으로 온·오프라인 여론을 조성하는 활동을 금지할 것을 경찰청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 규명의 작은 물꼬가 트였을 뿐 아직 밝혀야 할 것이 많다”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