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 가계의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수도권 집값 폭등세로 촉발된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는 매수심리가 저금리 기조와 맞물리면서 주요 은행의 가계대출 규모는 550조원을 돌파했다. ‘거미줄 규제’로 한동안 주춤했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00조원을 코앞에 뒀다.
4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552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만에 4조7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올해 1∼7월 월평균 증가액(2조8000억원)보다 68%나 높은 수치다.
가계대출 폭증의 주요 원인은 주택담보대출 증가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전월보다 2조9000억원 늘어난 392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월평균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1조8000억원 수준에 불과했는데 지난달에 급증한 것이다. 2016년 11월(3조2000억원) 이후 2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월별 증가액이다.
주택담보대출을 옥죄려는 정부 노력을 무색케 만든 것은 서울 집값이다. KB부동산의 월간 주택시장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가격은 7월보다 1.17%, 지난해 8월보다 7.37% 상승했다. 지난 3월(1.25%)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서울 아파트의 중위가격은 지난달 기준으로 7억7935만원에 이르렀다. 단독·연립주택을 포함한 전체 주택의 중위가격도 6억2969만원이다.
저금리 기조는 가계대출 증가에 기름을 붓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후 기준금리는 1.50%에 머물러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시중 부동자금은 1117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다. 은행권의 대출경쟁으로 대출이자 부담도 높지 않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가면서 가격 상승을 이끌고, 이는 추격 매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국내 가계대출의 경우 소득 수준보다 더 높은 부동산 투자 레버리지 목적의 대출이 가능한 구조”라며 “향후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침체될 경우 가계부채 문제가 (경제)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가계대출이 심상찮은 모습을 보이자 금융당국은 주요 시중은행 점검 등에 나섰다. 전세자금대출이나 개인사업자 대출을 주택 구입에 사용하는 사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시중은행들도 ‘자금용도 외 유용 사후점검 기준’을 내규에 반영하는 등 자체적인 대출 점검을 하고 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지금 아니면 사기 힘들다” 가계자금 빨아들이는 ‘부동산 블랙홀’
입력 2018-09-05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