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기 무서운데 11개월째 1%대 물가, ‘물가 착시’의 비밀

입력 2018-09-04 17:34

공식적으로는 저물가 시대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1.4% 오르는 데 그쳤다. 물가상승률은 11개월째 1%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추석을 앞두고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물가 수준은 통계청의 숫자와 큰 차이를 보인다.

통계청의 물가지표를 세부적으로 보면 석유류는 12.0%, 농산물은 7.0%나 올랐다. 쌀은 33.4%, 고춧가루는 44.2%나 값이 뛰었다. 그런데도 물가상승률이 1%대에 머무는 이유는 뭘까. 왜 체감물가와 지표물가가 다를까.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공식 지표는 없다. 다만 어느 정도인지를 엿볼 수 있는 ‘물가인식’이라는 지표가 있다. 물가인식은 소비자들이 지난 1년간 인식한 물가상승률 수준을 의미한다. 한국은행은 전국 도시 2200가구를 대상으로 이 지표를 조사한다.

지난달 물가인식은 전년 동월 대비 2.6% 올랐다. 지난달 체감물가(2.6%)가 지표물가(1.4%)보다 배가량 높은 셈이다. 둘의 격차는 올해 들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체감물가와 지표물가가 괴리를 보이는 이유는 물가 산출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460개 품목의 가격을 바탕으로 한다. 가구 소비지출에서 각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가중치를 둔다. 가중치가 높을수록 물가상승률에 큰 영향을 끼친다.

460개 품목 중 가중치 비중이 가장 높은 3개 품목에서 전세(1.2%)를 빼고 월세(-0.3%), 휴대전화료(-1.9%)는 지난달에 전년 동월 대비 가격이 떨어졌다. 폭염 탓에 채소 등 농축수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지만 이들 품목의 가중치는 크지 않다. 쌀과 고춧가루 값이 치솟아도 전체 물가지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반면 매일 밥과 김치를 먹는 국민 입장에서 보면 물가는 폭등한 셈이다.

통계청은 ‘착시 현상’을 거론하기도 한다. 달걀 값은 30% 이상 내렸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내려간 달걀 가격은 염두에 두지 않고 가격이 폭등한 다른 농산물 가격만 크게 생각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근본적 이유는 ‘제자리걸음 소득’에 있다. 소득이 늘지 않다 보니 물가가 조금만 올라도 가계에 큰 부담이 된다. 올해 1, 2분기 소득하위 60%의 처분가능소득은 1년 전에 비해 모두 감소했다.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드니 심리적 체감물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은 지표물가와 체감물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 기준 시점을 현재 2015년에서 2017년으로 바꿀 계획이다. 다만 통계의 틀을 손보더라도 소득주도성장이 궤도에 올라서지 않는 한 ‘비공식적 물가’의 고공행진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