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갈 데 없다고 ‘공짜노동’ 강요, 노숙인 등친 지원시설

입력 2018-09-04 17:35 수정 2018-10-16 14:37
지난달 13일 경기도 동두천의 한 농장에서 노숙인이 일하고 있다. 왼쪽은 2014년 H센터가 노숙인들에게 지급한 임금 내역서. 사회복지사 B씨 제공
2014년 H센터가 노숙인들에게 지급한 임금 내역서. 사회복지사 B씨 제공
경기도 의정부의 노숙인 지원시설 H센터가 시설에 입소한 노숙인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농장 일을 시켜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부 노숙인들은 “주말도 없이 한 달 내내 일했으나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폭염에 어지럼증을 호소해도 강제로 일을 해야 했다”고 호소하고 있다. 센터 측은 노숙인과 서비스 계약서를 체결하면서 근로시간을 ‘자원봉사’로 돌리는 편법까지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의정부시는 지난달 27일부터 조사에 착수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번 사안을 조사 중이다.

H센터에 근무했던 전·현직 사회복지사와 농장에서 일했던 노숙인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H센터 A원장과 그 지인들은 2014년쯤부터 경기도 동두천에 영농조합을 설립해 ‘농장 자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노숙인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자활 프로그램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이 제공된다. A원장은 농장 자활프로그램에 센터에 입소한 노숙인들을 일하게 했다. 농장은 산양, 청계닭, 감자밭이 있는 ‘아랫 농장’과 곤충을 키우는 ‘윗 농장’으로 구성돼 있다. A원장은 노숙인 3∼6명을 농장에 있는 숙소에 머물게 하며 일을 시켰다.

하지만 A원장이 노숙인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불만들이 제기됐다. 4년 가까이 농장에서 일했다는 최충헌(가명·55)씨는 4일 “새벽 6시쯤 일어나 산양 먹이를 챙기고 축사를 청소한 뒤 다시 윗 농장으로 올라가 곤충을 키웠다”며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일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15일에 농장을 그만둔 노숙인 김모(47)씨도 “땅 다지기부터 비닐하우스 짓기까지 농장 대부분을 노숙인들이 만들었다”며 “7∼8월엔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어지럼증을 호소해도 계속 일을 시켰다”고 말했다. 최기호(가명·70)씨는 “일요일은 물론이고 공휴일도 쉬지 못했다. 계속해서 업무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숙인들의 월급은 제각각이었다. 한 푼도 받지 못한 이들도 있었고, 월 80만∼90만원을 받는 이들도 있었다. 최기호씨는 “한 달 내내 일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일보가 확보한 임금지급 내역서를 보면 최씨는 2018년 3월 월급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온다. 2년 넘게 이곳에서 일했던 신모(45)씨는 “20만원을 월급으로 받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2014년 노숙인들에게 지급된 임금내역서를 보면 11만원부터 68만원까지 저임금이 대부분이었다. 한 노숙인은 21일 일하고 46만2000원을 받았다.

H센터에서 일했던 한 사회복지사는 “정부지원금 지급 기준에 맞추기 위해 월급을 임의로 책정하다보니 월급이 제각각”이라고 설명했다. 일은 계속 시키고, 월급은 정부지원금에 맞춰 지급했다는 의미다. 일부 노숙인은 “한 달 계속 일했는데, 10일만 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며 근무기록 자체를 의심하고 있다.

A원장 등은 2017년부터 노숙인들과 ‘자원봉사’ 항목이 포함된 서비스 계약서를 체결했다. 계약서에는 ‘사업 운영상 필요한 때에 발생되는 시간외 참여는 자원봉사 활동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계약서를 보면 한 노숙인은 월급 22만원을 받고, 90시간의 농장 자원봉사를 한 것으로 돼 있다. 올 2월부터 7월까지 농장 자원봉사만 400시간 넘게 한 노숙인도 있었다. 사회복지사 B씨는 “센터 예산이 부족하다보니 자원봉사라는 항목을 만들어 일종의 ‘수당 꺾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H센터는 자활 사업 관련 보조금으로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매년 약 6000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갈 곳이 없어서 참고 일했던 노숙인들도 많았다고 한다.

국민일보가 H센터와 비슷한 자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울시 산하의 한 노숙인 쉼터에 문의한 결과, 근로 계약서에는 근로 수당과 주휴 수당 등이 표시돼 있을 뿐 자원봉사 항목은 없었다. 쉼터 관계자는 “대개 금전적인 어려움 때문에 노숙인이 되는데, 이들에게 자원봉사로 일을 시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종인 나사렛대 교수는 “노숙인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자원봉사시간 적용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현재 해당 시설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노동 착취 등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행정권고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A원장은 직원을 통해 “현재 시에서 조사 중이다. 결과가 나올 때까진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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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의정부 H 센터가 노숙인들의 자활 및 자립을 위한 ‘참살이에듀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오히려 노숙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공짜노동’을 시켰고, 정부로부터 ‘자활프로그램’ 명목으로 지원되는 연 6000만원의 보조금을 챙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H 센터 측은 “‘참살이에듀팜’ 자활 프로그램 운영 중 시·도 보조금 횡령 사실은 없었고,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H 센터는 보조금 범위 내에서 더 많은 노숙인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당사자의 동의 하에 자원봉사를 통해 자활을 도왔다”고 알려 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