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사관생도들의 집이나 다름없었다. 주일 예배가 끝나면 사관생도들은 갈 데가 없으니 매번 우리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럴 때면 아내는 시래기와 소뼈를 고아서 먹였다. 생도들의 발 구린내와 된장 구린내가 섞여 기묘한 냄새가 났다.
나는 성경을 가르치는 서클 운동을 군에 접목했다. 기독학생회처럼 모임을 조직해 영성훈련을 했다. 장교들을 모아 기독장교회(OCU)를 조직했다. 매주 토요일 졸업반 생도들에게 인류 고전으로 성경을 강의하고 속회를 열었다.
사관학교를 섬길 때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1971년 공군사관학교 제19기 졸업식 때였다. 박 대통령 내외가 참석했는데 그날 대통령을 눈앞에서 처음 봤다. 왠지 대통령이 고독하게 느껴졌다. 뒷모습이 외롭고 측은하게 보였다.
국민교육헌장이 낭독된 후 대통령의 격려사가 있기 전 나의 축도 순서가 있었다. 내가 서야 할 자리는 사회자석이었다. 그 강단은 오직 대통령만 설 수 있었다.
의전 관계자들은 사회자석에서 기도하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데 마땅히 중앙의 강단에서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중앙 강단에 올라갔다.
“인류의 역사와 자유와 질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조상들이 할퀴고 찢긴 이 땅, 눈물과 피로써 지켜온 이 거룩한 땅 위에 4년간 교육을 마친 저 젊은 파일럿들이 있습니다. 저들이 하늘을 날 때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주시고, 저들이 잡은 조종간이 이 나라 역사를 움직이는 손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독수리처럼 힘차게 국토 위를 날아오르는 대한의 젊은 아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주께서 세워주신 이 나라의 대통령이 나라의 영도자로서 어려운 역사를 끌어가며 헌신하고 있습니다. 외롭지 않게 보살펴 주시옵소서. 힘들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졸업식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그렇게 기도를 끝내고 돌아서는데 대통령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있었다. 졸업식 후 대통령이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목사님, 오늘 좋은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의 눈물은 한 나라를 끌어안은 고독한 톱 리더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였다.
군목으로 있는 동안 나의 꿈은 외국처럼 장군 군목이 돼 군선교를 왕성하게 펼치는 것이었다. 군대를 복음의 황금어장으로 보고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감리교신학대학에서 3일간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냥 갈 순 없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 강원도 철원 대한수도원으로 달려갔다. 서울 쌍림동에서 기관목사로 일한다는 안은섭 목사를 그곳에서 만났다. 교회 이름은 광림교회라 했다. 그와의 만남은 내 인생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끌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