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본부, 안전 계측 분석 결과 “지반서 이상징후 발견 안돼”… 주민들 “못 믿겠다” 여전한 공포
대우건설 “책임 인정” 사과문… 지반공학회가 정밀진단 수행
서울 금천구가 지난달 31일 새벽 지반 침하가 발생한 가산동의 A아파트 주민들에게 “지반이 안정적이므로 귀가해도 좋다”고 2일 말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 집을 나와 대피한 주민 150여명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3일과 4일 비가 온다는 소식에 2차 피해를 걱정하고 있다.
금천구와 인근 오피스텔 시공사인 대우건설 등으로 구성된 재해대책본부는 이날 오후 7시30분쯤 A아파트 단지 내 광장에서 대피 중인 주민을 불러 모아놓고 “지반 전문자문단이 계측기 등으로 분석한 결과 이상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반의 안정화가 확인돼 자택 입주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표를 듣던 주민 사이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당장 비가 다시 온다는데 절대 못 들어간다”는 소리도 들렸다. 주민 김채곤(67)씨는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아직 집에 들어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쉽게 안심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42)씨는 “오늘까지 일단 외부 숙박업소에서 지낼 것”이라며 “들어간다고 해도 공사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기상청은 3∼4일 중부지방에 50∼100㎜(많은 곳은 150㎜) 비를 예보했다. 주민들은 내려앉은 지반에 빗물이 스며들면 또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천구는 “지반이 침하된 부분에 흙을 되메우기하는 작업이 끝나 방수포를 설치하고 있다”며 “외부에서 물이 유입되지 않도록 모래포대 등으로 다른 쪽으로 우수가 흐르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지난번 내린 빗물이 빠지지 않은 곳도 있다. 진짜 비가 와도 안전한 게 맞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고 이후 인근 호텔이나 학교 체육관 등에서 잠을 잔 주민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은 작은 이상 현상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날 새벽 1시쯤에는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사는 주민이 “이상한 소음을 들었다”며 신고를 했다. 금천구가 오피스텔 건설 현장을 확인한 결과 스프링클러에서 새는 물소리였다. 주민들은 또 한 차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날 저녁까지 주민들은 옷가지 등 생필품을 가지러 자기 집에 들어갈 때 ‘신고’를 했다. 아파트 동 입구에서 금천구 직원에게 호수와 이름을 써내거나 소방관을 대동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주민 최모(68)씨는 “집이 언제라도 무너질 것 같다”며 “잠깐 들어가 세면도구 등을 챙겨 나왔는데 내 집이 내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사고가 지반 침하 장소 바로 옆에서 진행되는 대우건설의 오피스텔 공사 탓에 일어났다고 주장해 왔다. 공사로 지반이 약화됐고 지난달 27일부터 사고가 난 날까지 비가 148.5㎜ 내려 토사가 유출됐다는 것이다.
대우건설은 저녁 주민이 모인 장소에서 공식사과문을 낭독하고 “공사현장 흙막이 벽체 붕괴 사고로 주민 여러분께 피해가 발생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사를 완전히 중단할 것인지 명확히 답하지 않아 거센 항의를 받았다. 성난 주민들은 “답이 충분하지 못하다”며 건설사와 금천구 관계자를 에워싸고 30분 넘게 비난을 쏟아냈다. 경찰이 물리적 충돌에 대비해 현장을 지켰다.
구청은 지반의 추가 침하를 막기 위해 오피스텔 건설 현장에서 흙 되메우기 작업을 지난 이틀간 진행했다. 인근 도로까지 지반 침하 징후를 보인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구청 측은 “시추기와 지반조사, 지표침하계 분석 결과에 이상이 없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고 답했다.
향후에는 사고현장 정밀안전진단이 진행된다. 한국지반공학회가 이를 수행할 예정이다. 금천구는 “(학회는) 9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연구를 수행할 것”이라며 “최종 보고서는 10월 31일 발표하고 계측기를 설치해 향후 1∼2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사고 10일 전 금천구에 지반 균열 사실을 알리는 공문을 발송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천구는 사고가 난 뒤에야 공문을 접수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10일 전 균열이 발견됐을 때 빨리 보강공사를 했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데 균열이 난 곳에 빗물까지 스며들어 붕괴를 더 촉진시켰다”고 분석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주민들 “집으로 가도 된다지만… 폭우 소식에 더 불안”
입력 2018-09-02 18:27 수정 2018-09-02 2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