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건보 내역 제공은 위헌” 헌재 “자기결정권 침해” 판단

입력 2018-08-30 22:03

철도노조 파업을 주도했다가 수사선상에 오른 노조 간부들의 요양급여 내역을 건강보험공단이 경찰에 제공한 행위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30일 김명환 전 철도노조위원장과 박태만 전 수석부위원장이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을 경찰에 제공한 행위는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김 위원장 등은 2013년 12월 철도노조 파업을 이끌고 노조 지도부 체포를 방해한 혐의로 경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은 이들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에 병원에서 진료 받고 건보 혜택을 받은 요양급여 내역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공단은 병명을 제외하고 2∼3년치 내역을 제공했다. 이에 김 위원장 등은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경찰은 이미 통신사에서 위치추적 자료를 받아 김 위원장 등의 위치를 파악한 상태였다”며 “경찰에 제공된 요양기관명 중에는 전문병원도 포함돼 있어 청구인들의 질병 종류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단의 정보제공 행위는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날 수사기관의 ‘패킷감청’을 허용한 통신비밀보호법 5조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패킷감청이란 인터넷회선을 오가는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감청하는 것을 뜻한다. 헌재는 “수사기관의 권한남용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통제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범죄수사를 이유로 패킷감청을 허가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다만 단순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수사를 진행할 법적 근거 자체가 사라져 혼란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2020년 3월 31일까지만 해당 조항의 효력을 유지하도록 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