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빅2’ 아르헨과 브라질의 경제 위기, 페소화·헤알화 급락

입력 2018-08-31 04:04
사진=AP뉴시스

극심한 경제난을 견디지 못한 베네수엘라 국민의 엑소더스로 콜롬비아 등 주변국의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남미의 빅2’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마저 경제위기에 휘청거리고 있다. 지구촌을 강타한 무역전쟁 여파로 외국인 자본 이탈이 가속화되는 등 남미 경제에 암운이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우리시오 마크리(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페소화 가치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조기 집행을 요청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날 페소화 가치는 사상 최저치인 달러당 34.20페소까지 떨어졌다. 하루 만에 7.9%가 빠졌다. 2015년 12월 변동환율제가 적용된 이후 하루 기준으로 가장 큰 낙폭이다. 올 들어 페소화 가치는 45.3% 하락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5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바 있다. 지난 수년간 공공지출을 늘리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경제난을 겪게 된 아르헨티나가 내년에 만기도래하는 249억 달러의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퍼졌고, 외환위기를 두려워한 투자자들이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페소화 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IMF는 6월 구제금융으로 3년간 500억 달러(약 55조6000억원)를 지원키로 결정하고 우선 150억 달러를 지급했다. 나머지 350억 달러는 아르헨티나의 긴축재정 등 구제금융 프로그램 이행에 따라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구제금융의 투입에도 페소화 폭락은 멈추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이번 주에만 보유 중인 외환 5억 달러를 매각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르헨티나의 SOS에 IMF는 30일 구제금융을 조기 집행하겠다고 결정했다. 다만 규모와 시기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남미의 대국 브라질도 10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헤알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29일 기록한 달러당 4.141헤알은 2015년 1월 이후 31개월 만에 최저치다. 이달 들어 10%, 올 들어 24.8%나 폭락한 수치다.

브라질은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2016년 탄핵으로 물러난 이후 정치적으로 계속 불안정한 상태다. 대선을 앞두고 좌파 노동자당(PT)이 부패 혐의로 수감 중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을 대선 후보로 추대하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다. 룰라 전 대통령이 37%의 지지율로 여론조사 1위를 기록 중이지만 아직 출마 자격 여부가 확실치 않다.

브라질 연방법원은 조만간 룰라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자격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현재로선 실형을 선고받은 정치인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법령 ‘피샤 림파’(Ficha Limpa·깨끗한 경력)를 적용해 출마를 막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지지자 반발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또 룰라가 대선에 나오지 못할 경우 국민들이 노동자당이 지지하는 다른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가능성도 있다. 국제 투자자들은 복지정책 강화가 예상되는 노동자당의 집권을 불안해하며 브라질에서 발을 빼고 있다. 결국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헤알화 가치도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