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강의를 준비하면서 늦게까지 책을 읽는 날이 늘었다. 깊은 밤 매미 소리가 모차르트의 선율처럼 경쾌하다고 느꼈다. 여전히 덥지만 늦여름에 듣는 매미 소리는 왠지 가을의 전령사 같은 청량감이 있다.
독서가 취미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중학교 무렵부터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1만권 정도 읽은 것 같다. 그중 3000권은 유학 시절에 읽었다. 이렇게 독서량이 많은 건 읽고 싶은 책에서 읽고 싶은 부분만 읽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쇼펜하우어의 격언을 따른다. “좋은 독서란 책을 다 읽지 않고서도 책의 중심 내용을 잘 파악하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가진 실용주의 기질 때문일 수도 있다. 이미 아는 내용을 또 읽는 것은 시간낭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좋은 책은 다 읽는다. 다 읽을 뿐 아니라 여러 번 읽는다. 카프카가 말했듯이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가슴을 후벼 파는 책, 재난처럼 우리를 강타하는 책, 깊이 애통하게 하는 책, 마치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처럼, 또는 아무도 없는 외진 숲에 버려진 것처럼, 또는 자살처럼, 그렇게 우리를 애통하게 하는 책,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쪼개는 도끼와 같은 책은 정말 천천히 읽고 반복해서 읽는다. 나에게는 성경과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그런 책이라 할 수 있다.
독서는 습관이다. 존 파이퍼 목사는 매일 15분 시간을 내 조너선 에드워즈나 존 오웬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팀 켈러 목사도 역시 매일 밤 장 칼뱅의 ‘기독교강요’를 읽는다고 말한 일이 있다. 내가 만난 탁월한 설교가들은 대부분 독서가 습관이 돼 있다.
매일 독서를 하려면 또 다른 습관이 필요하다. 지인 중 한 분은 독서를 많이 하려면 다섯 가지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소식과 소침, 소면, 소언, 소류다. 적게 먹고, 적게 자고, 적게 만나고, 적게 말하고, 적게 놀면 독서할 시간이 생긴다는 의미다. 독서하기 좋은 곳을 지속적으로 찾는 것도 좋다. 인터넷이 없거나 쾌적하고 조용한 곳이면 능률이 오른다.
더 효과적인 독서를 위해 관련 주제별로 여러 책을 읽는 것도 좋다. 일본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 20만권으로 가득 찬 서재를 지어 놓고 독서를 한다. 그는 몇 년 동안 같은 주제의 책을 파고 또 파는 독서법을 갖고 있다. 동일 주제의 책을 반복해 읽으면 그 분야의 최첨단 지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클래식 음악이나 몇몇 화가들과 관련한 책을 한 번에 많이 읽으면서 그 방법의 유효성을 체험한 적이 있다. 좋은 작가의 책을 한 번에 다 읽는 것도 독서 능률을 높여주는데 때로 내가 그 사람이 된 듯한 느낌도 들 때가 있다.
독서하면서 노트필기를 하면 집중할 수 있다. 기억도 오래 간다. 저자의 말을 요약해 내 식대로 써 보거나 맘에 드는 구절을 직접 적어보기도 한다. 마이클 샌델이 말하듯이 저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독서하는 것도 좋은 습관이다.
독서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독서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책읽기를 삶의 일부라 생각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듯이 삶의 한 유희로서 독서하다 보면 어느새 많은 양의 책을 읽게 된다.
올 초 문화체육관광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이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인터넷 등 대체재가 많아서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웬만한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게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정치 뉴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결국 출판시장을 약화시켰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독서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고 인생을 풍요롭게 하며 다른 이를 이해하며 더불어 살도록 도와준다. 살기가 팍팍해져서 책을 읽는 성인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 사회가 더욱 살기 힘들어진 것일까. 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가을이면 오히려 떨어지는 책 판매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출판업계가 만들어낸 말이라는 설도 있다. 아무튼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이번 가을은 책도 좀 팔리고 삶도 좀 풀리는 계절이면 좋겠다.
우병훈(고신대 신학과 교수)
[시온의 소리]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하는 독서
입력 2018-08-30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