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 대통령의 1920년 6월 행적을 놓고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다툼거리를 제공한 건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백년전쟁’이다. 검찰과 변호인은 100년 전 작성된 미국 이민국 공문, 독립운동 기관지, 각종 학술자료 등을 꺼내 놓고 ‘사료전쟁’을 벌였다.
27, 28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다큐멘터리 감독 김지영·최진아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김태업) 심리로 진행됐다.
김씨 등은 2012년 이 전 대통령이 1920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맨법(Mann Act)’ 위반으로 체포돼 재판까지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제작했다. 맨법은 1900년대 미국 법률로, 성매매 및 음란행위 등 부도덕한 목적으로 여성과 주(州) 경계를 넘는 행위를 처벌하던 법이다. 이 전 대통령 아들 이인수 박사는 2013년 5월 사자명예훼손으로 김씨 등을 고소했다.
검찰은 ‘백년전쟁’의 내용을 크게 맨법 위반, 독립성금 횡령 등 6개 범주로 나눠보고 맨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만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국민일보 2017년 10월 30일자 2면 참조). 4년6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김씨와 최씨가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김씨 등이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허위사실임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이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을 다큐멘터리 영화에 포함했다고 주장했다. 허위사실이란 점을 입증하기 위해 1920년 6∼8월 작성된 미국 이민국 공문, 김노디의 이민국 진술서, 같은 해 7월 15일자 신한민보 보도 등을 제시했다. 또 김씨 등이 미국의 학자 로버트 장에게 보낸 이메일 등을 근거로 사실 확인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변호인 측은 이 전 대통령의 맨법 위반 여부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역사학계에서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장이 집필한 저서 ‘하와이의 한인들’과 당시 미국 형사절차법의 특성 등을 근거로 이 전 대통령이 맨법 위반으로 사법처리됐음을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특성상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두 피고인은 끝까지 결백을 호소했다. 최씨는 “허위사실임을 알았다면 왜 끝까지 관련 사료를 찾기 위해 노력했겠느냐”며 반문했다. 김씨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1920년 미국 이민국을 찾아가 이승만 본인의 해명서를 미국 법정에 제출할 것”이라며 “그것이 맨법 사건의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다큐 ‘백년전쟁’ 사자명예훼손 혐의 국민참여재판 檢 “허위 사실 유포” 辯 “표현의 자유 보장”
입력 2018-08-29 04:04 수정 2018-08-29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