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은 나랏돈을 내년에 푼다. 그때와 같은 위기 상황은 아니지만 소득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만성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고용 쇼크를 해소할 ‘일자리 부양책’ 카드도 꺼내들었다. 정부는 세수가 뒷받침하고 있어 ‘초(超) 슈퍼예산’ 편성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재정 건전성 악화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내년 정부 예산을 올해(428조8000억원)보다 41조7000억원(9.7%) 증가한 470조5000억원으로 확정했다. 지출 증가율은 2009년(10.6%) 이후 가장 크다.
내년 예산에는 2년차를 맞아 경제 분야에서 고전하는 문재인정부의 고민이 담겨 있다. ‘쇼크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일자리, 저출산, 소득 양극화 지표는 악화일로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최저임금의 두 자릿수 인상이 확정되면서 ‘고용한파’ ‘자영업 위축’ 우려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를 풀어야 할 정부에 ‘확장적 예산’ 편성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일단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짜면서 과거 4대강 사업 같은 ‘반짝 경기 부양책’에 재정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등 물적 투자보다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기본 철학이 깔려 있다. 이런 기조는 올해보다 22%나 늘려 사상 최대인 23조5000억원을 책정한 일자리 예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직접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보다 민간부문에서 일자리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간접 사업에 초점을 맞췄다. 대표적인 게 신중년 일자리 지원 사업이다. 정부는 50대 조기 퇴직자에게 재취업 교육 등을 제공하는 이 사업에 올해보다 배 이상 많은 1970억원을 배정했다.
또 정부는 소득분배 개선,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일자리안정자금으로 2조8200억원을 투입한다. 근로장려금(EITC) 예산으로는 올해보다 3배 이상 늘어난 3조8000억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확장적 예산’이 경기 살리기, 일자리 부양, 저출산 해소 등 구조적 문제를 풀 단초를 마련할지는 미지수다. 지난 10년간 정부는 매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확장적 재정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것도 모자라 올해까지 4년 연속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그런데도 한국 경제가 재정지출 확대 효과를 봤다고 말하는 전문가는 드물다.
토목 SOC 등 단기적 경기 부양에 매달린 측면도 있다. 다만 더 큰 문제는 ‘재량지출’ 비중이 줄어든다는 재정정책의 근본적 한계에 있다. 전체 예산에서 복지 등 ‘의무지출’ 비중은 이미 지난해 50%를 넘었다. 내년 예산 증가율이 9.7%나 되지만 정부가 맘껏 쓸 수 있는 재량지출의 예산 증가율은 8.0%에 그쳤다.
의무지출은 한 번 늘어나면 줄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내년까지 세수 호황이 지속돼 이런 문제점을 덮을 수 있지만 2020년부터는 쉽지 않다. 정부도 이를 알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관리재정수지 목표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내’로 잡았던 정부는 이번에 슬그머니 ‘GDP 대비 -3% 이내’로 낮췄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실질적 가계부다. 1% 포인트 차이지만 2021년을 기준으로 하면 적자폭이 10조원을 넘는다. ‘선진국에 비해 재정 건전성은 양호하다’는 정부의 단골 레퍼토리가 통하지 않을 날이 다가온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일자리·경기 부양 위해 내년 471조원 초 슈퍼예산, “문제는 효과”
입력 2018-08-28 18:27 수정 2018-08-28 2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