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로 온 ‘비보호’ 탈북민 교회가 돌봐야죠”

입력 2018-08-29 00:01 수정 2018-08-29 14:05
임용석 의정부 한꿈교회 목사가 최근 서울 마포구 극동방송 로비에서 비보호 탈북민을 위한 사역을 시작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탈북민 쉼터 운영하는 임용석 한꿈교회 목사

지난 23일 오전 9시 경기도 부천의 한 낡은 연립주택. 59.5㎡(약 18평) 규모의 집에서 선풍기만으로 폭염을 견디던 김영희(60·여)씨가 탈북 과정을 이야기하던 중 돌연 눈물을 흘렸다.

“어린 딸들을 북한에 두고 돈 벌러 국경을 넘다 인신매매 당해 중국에서 10여년간 살았습니다. 한국 오면 환영받을 줄 알았지 이렇게 ‘비보호’ 딱지를 붙여 차별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범죄자 취급받는 것 같아 억울하고 부끄럽습니다.”

중국에서 북한 출신임을 숨기고 살던 김씨는 돈을 벌기 위해 2010년 위조 호구증으로 한국에 와 2개월여간 지냈다. 비자 만료 전에 중국으로 돌아갔으나 이웃주민이 탈북민으로 한국에 정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2014년 다시 한국행에 나섰다. 하지만 최초 방한 시점으로부터 1년 이상 경과돼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비보호 대상 판정을 받았다. 현재 그는 3년 전 탈북한 13세 손주와 보증금 400만원에 월세 12만원짜리 집에서 지낸다. 부천시 산하 복지관 지원금 80여만원에 시간제 노동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해당 법은 항공기 납치나 마약거래 등 국제형사범죄자나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 위장탈출 혐의자, 체류국에 10년 이상 생활 근거지를 둔 사람, 국내 입국 후 1년이 지나 보호 신청을 한 사람에겐 비보호 결정을 내리도록 규정한다. 지난달 2일 통일부 발표에 따르면 2007∼2017년 비보호 결정을 받은 탈북민은 236명이다. 김씨처럼 ‘국내 입국 1년 후 보호 신청’(186명) 사유로 비보호 판정을 받은 경우가 이들 중 가장 많다.

통일부는 최근 보호 신청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이현일 북한인권정보센터 이사는 “비보호 탈북민 대다수가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들로 이들 중 인신매매 경력이 있는 이들이 80∼90%에 달한다. 중국 등 제삼국 출신자를 자녀로 둔 경우도 절반 이상”이라며 “탈북민 보호 신청 기간이 늘어나 보호 대상의 폭이 넓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비보호 탈북민은 다른 탈북민과 달리 정착금, 주거, 취업 등 정착지원법에 따른 정부의 정착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비보호 탈북민이 집을 구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 주거지를 마련하지 못하면 종교시설 등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쉼터를 전전하며 생활하곤 한다.

경기도 의정부 한꿈교회(임용석 목사)가 운영하는 ‘한꿈터’ 역시 오갈 곳이 없는 비보호 탈북민을 위해 마련된 쉼터 중 하나다. 한꿈터는 주택이 미배정됐거나 거주지를 마련치 못한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쉼터로 2015년 설립됐다. 주거뿐 아니라 취업 알선 및 의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해 자립 지원에 나선다. 비보호 탈북민의 경우 그간 17명이 쉼터에서 지내다 자립했고 현재는 2명이 생활 중이다. 임용석 목사는 “집 없이 바로 사회에 나오다 보니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적지 않은 편”이라며 “이들 중 일부는 한국사회 적응이 어려워 중국으로 돌아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임 목사는 “비보호 탈북민은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로 정부로부터 사실상 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라며 “음지(陰地)에 갇힌 이들에게 교회가 손을 내밀어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무엇보다 의기소침해 있는 이들에게 교회가 지속적인 격려와 용기를 주는 일이 필요하다”며 “이 땅에 나그네로 온 이들을 환대하는 교회가 더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천=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