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전세자금대출로 ‘갭투자’ 만연, 칼 빼든 금융위

입력 2018-08-29 04:00

최근 서울 집값 급등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전세자금대출의 급증세에 금융 당국이 칼을 빼들었다. 이번 주부터 시중은행 전세대출 등이 편법으로 실행된 사례가 있는지 집중 점검에 나선다. 서울을 중심으로 다시 고개를 드는 ‘갭투자’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8일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가계부채 관리점검회의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불안한 서울 아파트값을 진정시키기 위한 대출 규제 강화의 신호탄 성격이다. 김 부위원장은 “주택시장 불안이 전국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선제적,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의 전세대출 및 임대사업자대출 취급 현황을 점검하고, LTV(주택담보인정비율) 등 대출 규제 준수 여부, 편법 신용대출에 대한 점검도 강화한다.

최근 부동산시장에서는 전세대출이 갭투자를 위한 ‘꼼수’로 활용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전세대출이 지난해 8월 강화된 대출규제를 피해갈 수 있어서다.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에 따라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에서는 LTV가 40%로 제한된다.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 4억원만 대출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전세대출은 보증금의 최대 80%까지 받을 수 있다. 보증금이 6억원이라면 4억8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여기에다 투기지역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건수가 가구당 1건으로 제한되는데 전세대출은 이런 제한이 없다. 이중으로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셈이다.

은행들은 전세대출을 내줄 때 전세계약서를 확인하지만 실거주 여부는 조사하지 않는다. 이런 점을 악용해 지인들 간에 허위로 전세계약을 맺고, 대출을 받은 후 주택 구입에 활용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일부 다주택자들은 전세대출을 받은 후 전세로 거주하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여유자금을 갭투자에 활용하기도 했다.

금융 당국은 이 같은 꼼수대출이 서울 아파트값을 끌어올리는 원인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실제 전세대출 증가세는 유독 가파르다. 전체 가계부채 증가율이 비교적 안정적인 것과 대조적이다. 전세대출은 올해 상반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12조2000억원 증가했다. 비율로는 37.2% 늘어났다. 2015년에 전년 동기 대비 17.6%, 2016년 25.1%, 2017년 27.9%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속도도 빠르다. 전세가격 상승이나 아파트 공급물량 증가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속도다. 한성대 김상봉 교수는 “전세대출 증가가 주택 가격에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허위 계약을 통한 용도 외 유용이 적발될 경우 엄중 조치하기로 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임원회의에서 금융회사의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전세대출 운영 실태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지시했다. 하지만 대출 서류에 문제가 없는 경우 용도 외 유용을 얼마나 적발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실제 현장 점검을 해봐야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