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가족] 함께 웃을 때, 가족이다

입력 2018-08-31 17:00
가정은 사랑의 안식처이며 자녀에겐 인생의 훈련장이다. 하이패밀리가 진행하는 아빠육아교실 '라떼파파'에 참여한 어린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다. 하이패밀리 제공
가족의 정의에 관한 문제를 냉소적으로 다룬 일본 영화로 2018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의 한 장면.
일본의 낡고 좁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집. 가족으로 보이는 6명은 어딘가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오래전 남편에게 버림받고 외롭게 사는 할머니 하츠에(기키 기린), 일용노동자에 살인공모 전과도 있는 오사무(릴리 프랭키),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노부요(안도 사쿠라), 유사 성행위를 하는 업소에서 일하는 아키(마츠오카 마유), 주차장에서 주워온 쇼타(죠 카이리), 동네 아파트에서 구해온 유리(사사키 미유)가 함께 산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다. 서로를 엄마, 아빠, 아들과 딸이란 호칭으로도 부르지 않는다. 이들은 할머니의 연금이 필요하고 할머니는 이들의 돌봄과 정서적 지지가 필요하다.

‘2018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영화 ‘어느 가족’의 내용이다. 영화는 가정폭력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냉소적으로 그리면서도 가족의 정의에 관해 묻는다. 연금에만 의존한 채 살아가는 노년층의 고독과 소외 문제, 실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복지 문제, 아동학대 문제, 여기에 최근 유엔 인권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롤리타 성향(소아성애)의 풍속점 문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를 이야기한다. 또 필요에 의해 맺어진 ‘가짜 가족’이 혈연으로 맺어진 ‘진짜 가족’보다 더 끈끈한 가족애를 나눌 수 있느냐는 질문을 남긴다.

가족의 두 얼굴

가정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곳,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부모에겐 사랑의 안식처이며 자녀에겐 인생의 훈련장이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매가 함께 소통하는 곳이 돼야 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가정은 인생의 영원한 고향이며 베이스캠프이다.

그러나 현대의 가족은 상처를 주고받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가장 사랑하고 목숨까지 던질 수 있는 가족이 때로는 누구보다 아픈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된다. 가족은 힘이 되기도 짐이 되기도 하며 친밀함 뒤에 미묘한 갈등이 숨어 있다.

“가족에게 소속되지 못하고 거부당한 경험을 반복한 사람은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스스로 무가치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커서 가정을 꾸리면 이런 심리가 가족들에게 무관심하고 자기 일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쳐지는 행동을 낳는다. 사실 속마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모를 뿐이다.”(최광현의 ‘가족의 두 얼굴’ 중에서)

영화 속 ‘가짜 가족’을 좀 더 들여다보자. 등장인물들은 모두 역기능 가정에서 튕겨 나온 개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편의 배신, 전 남편의 폭력, 부모의 방치와 학대 등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깊다는 것. 노부요와 유리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이다. 유리는 끊임없이 학대당했고 심지어 친엄마로부터 “낳은 것이 후회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노부요는 “사랑하면 때리는 게 아니라 안아줘야 한다”고 말하며 유리를 품어준다. 일하다 다리가 부러져도 산재보험 처리가 되지 않고, 시급이 높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등 세상을 원망할 이유가 가득하지만 이들은 서로 보듬어 준다.

이들은 ‘진짜 가족’에서 얻지 못했던 연대, 신뢰, 사랑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혈연이 아닌 서로의 선택으로 맺어진 것이기 때문에 ‘진짜’ 가족보다 더 낫다”는 노부요의 말에 할머니는 “괜한 기대를 하지 않아서 좋다”는 말을 더한다. 서로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을 들추려 하지 않고, 서로의 아픔을 어설프게 위로하려고 하지 않으며 각자 삶의 방식에 간섭하지도 않는 것이 이 이상한 가족의 행복 비결이다. 집안의 체면이나 본인이 못 이룬 꿈을 가족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시간을 나누고 정을 나눈다. 정작 ‘진짜 가족’은 서로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실망하고 분노하지 않는가. 저마다 깊은 마음의 상처와 결핍을 지닌 채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여섯 인물이 구성하고 있는 가족은 “우리는 마음으로 이어져 있어”라고 말한다.

이들은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가족이라 할 수 없다. 이들이 함께 모여 살게 된 이유는 가출이나 유기 또는 유괴의 결과일 뿐이다. 상처로 조각난 가족의 구성원들이 다른 가족을 만나 가족이란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이들은 선택한 가족을 통해 정서, 소통, 연대를 누리고자 한다. 만약 이들이 원 가정에서 이런 가정의 기능을 누릴 수 있었다면 행복한 가족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들은 뜻밖의 사건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다. ‘가짜 가족’ 만들기가 실패한 원인은 무엇일까. 보편적 통념의 부재, 윤리적 가르침의 부재, 부모 교육의 부재이다.

가정은 ‘사람 만드는 공장’

가족 치료와 의사소통의 권위자인 버지니아 사티어(1916∼1988)는 저서 ‘사람 만들기(People Making)’에서 “가정은 사람이 만들어지는 공장이며, 어른인 부모는 사람을 만드는 자”라고 말했다. 가정과 부모의 역할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다. 사티어는 건강한 가족의 요소로 자아존중, 의사소통, 규칙, 사회적 관계를 꼽았다.

일반적으로 가정은 순기능 가정과 역기능 가정으로 나뉜다. 순기능 가정이란 가정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가정으로서 가족 구성원 간의 인격적 성장과 성숙이 잘 이뤄지며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의 욕구가 적절하게 충족되는 건강한 가정이다. 갈등이나 위기가 없는 가정이라는 뜻이 아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해 나갈 능력이 있는 가정이다.

이에 반해 역기능 가정이란 가정의 형식은 갖춰졌지만 진정한 사랑과 친밀한 결속력이 없는 가정을 말한다. 아버지 어머니와의 사이도 냉담한 관계이고, 아버지가 함께 살지만 자녀 양육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관여하지 않는다면 관계의 끈이 끊어진 역기능 가정이다. 사실 우리 주위에 이런 역기능 가정이 적지 않다.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어른이 돼서도 내적인 갈등이 심한 ‘성인아이(adult-child)’로 살아가게 된다. 성인아이는 사회에 나와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고, 가정을 꾸리면 또다시 역기능 가정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성인아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상처를 받은 사람은 내적치유를 통해 새롭게 돼야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한 가족 구성원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족 시스템의 문제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한 개인의 인격적 결함이 사회의 엄청난 비용 부담으로 돌아온다.

가정이 소중한 사실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정작 이처럼 소중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예전엔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배워지는 것들이 있었다. 전통적인 대가족 안에서는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삶의 의지가 넘치고 작은 사회질서가 있었으며 우애가 있고 선의의 경쟁이 있었으며 희생이 있었다. 가족을 통해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었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또 가정에서 믿음의 전수가 이뤄져야 한다. 많은 부모가 자녀를 교회에 출석하게 하는 것을 믿음의 전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해주는 게 믿음의 전수이며 부모의 사명이다.

▒ 가족에 하나 더

행복한 가정 만드는 비결, 먼저 경청하고 소통하라


사람은 가족관계를 통해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형성하게 될 대인관계에 대한 기본적 믿음과 기대를 하게 된다. 이것은 친구, 연인, 부부, 자녀 등 여러 관계 속에서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가족관계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찍어 내는 틀이라 할 수 있다. 가족관계가 어떤 틀이었는가에 따라 이후의 수많은 인간관계가 그와 유사하게 만들어진다.

가정사역자들은 행복한 가정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의사소통이라고 말한다. 대화의 방식을 통해 관계가 형성된다. 정동섭 가족관계연구소장은 성공적 의사소통을 위한 규칙으로 ‘나 진술문(I-message)’과 ‘ABC 화법’을 제시했다. ‘A란 상황에서 당신이 B란 행동을 했을 때 나는 C란 감정을 느꼈다’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당신이 시장에 함께 가서 물건을 살 때 이것저것 흥정하면서 마냥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나는 매우 지루하고 짜증이 나요” “나는 당신이 집안일을 거들어 주지 않아서 지저분하면 짜증이 나요” “운전할 때 당신이 차선을 수시로 바꾸니까 사고가 날 것 같아 불안하고 겁나요” 등이다.

만일 가족 간에 의사소통이 단절됐다면 이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경청이다. 부모가 자녀의 말, 부부가 배우자의 말을 어떻게 들어주느냐가 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자신의 견해를 화내지 않고 말로 전달하는 ‘나 진술문’이 기본원리이다. 너로 시작하는 말은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식의 진술이지만, 나로 시작하는 말은 우리의 입장을 중립적 비판적 합리적으로 진술하는 것이다. 행복한 가정의 또 하나의 비밀은 추억 만들기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가족을 연대감이란 끈으로 묶어 준다. 가족관계의 고리가 끊어지면 사이비 이단 종파들은 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마지막 때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는 가정이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