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실직·불안…어린이집 내부고발의 대가 “아동학대 다시 신고 안할 것”

입력 2018-08-27 04:00

문제 지적 후 동료들 피하기 시작, 경찰 조사 나서자 사실상 쫓겨나
보복 공포에 불면증 등 시달려…내부고발자 보호조치 취해야


“또 동료교사가 아이를 때리는 것을 보게 되면 그때는 절대 알리지 않을 거예요.”

최근 한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정황을 부모들에게 알린 보육교사 은지씨(가명)는 26일 ‘폭로’ 이후 겪는 괴로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동료교사가 아이들을 학대한다고 부모들에게 털어놓은 뒤 해당 어린이집에서 사실상 쫓겨났다.

처음엔 동료교사 A씨의 행동이 ‘학대’인지 헷갈렸다. A씨가 평소 아이들에게 괴성을 지르고 몸을 이리저리 잡아당기는 것을 보고 거친 훈육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CCTV 사각지대를 찾아 그곳에서 원생들의 목을 조르거나 발로 밟는 등 폭력 정도가 심해지자 은지씨는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은지씨는 며칠을 고민한 뒤 어린이집 원장에게 학대 정황을 전했다. 그러나 원장은 되레 ‘어린이집에 해를 끼치려고 그러냐’며 화를 냈다. 그러는 동안 A교사의 폭력은 계속됐다. 한 학부모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것 같았다. 은지씨는 결국 A교사의 학대 사실을 알렸다.

은지씨를 향한 어린이집 내에서의 보복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은지씨는 “경찰 수사 중 다른 교사들의 학대 정황도 드러나면서 나는 순식간에 동료교사 사이에서 왕따가 됐다”며 “일자리를 잃게 하고 동료를 신고한 나쁜 사람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원장은 어린이집이 위기를 맞은 책임을 은지씨에게 물으며 사직서를 요구했다.

어린이집을 그만둔 이후에도 2차 피해가 이어졌다. 해당 어린이집은 경찰 수사가 끝나지 않아 계속 영업 중이다. 은지씨는 “원장이 ‘어린이집 폐쇄 조치는 절대 없다’고 공지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나를 업무방해로 고소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은지씨는 일에 집중할 수 없어 새 직장에도 최근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은지씨는 요새 멍하니 있는 일이 많아졌다.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잠도 못 잔다. 은지씨는 “나 좋자고 한 일도 아닌데 이리저리 물어뜯기니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피해 아동 학부모에게서 ‘알려줘서 고맙다’고 연락이 오지만 괴로움은 덜어지지 않는다.

은지씨는 몇 년 전 다른 어린이집에서 만난 보육교사 B씨가 생각난다고 했다. 당시 B씨는 동료교사의 아동학대를 경찰에 신고했다. 은지씨는 “동료교사들이 ‘저 선생 독하다’ ‘저 사람 앞에서 행동 조심해라’며 B씨를 피해 다녔다”며 “B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힘들어했는데 왜 그런지 이제 알겠다. 내 고통도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린이집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기현 성균관대 교수팀의 2015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어린이집 아동학대 발생 시 신고자가 동료교사일 경우 가해자에게 고소·고발 등 강력한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이 부모 등 피해자가 신고했을 때보다 4.07배 높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동료교사가 가장 정확하게 학대 행위를 파악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어린이집 학대사건 신고자 중 동료교사의 비율은 2016년 기준 8%에 불과하다. 이현진 영남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일자리 제공 등 실효성 있는 내부고발자 보호조치 및 익명 신고시스템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