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原油 ‘빅데이터’ 규제 벽도 허문다

입력 2018-08-27 04:04

활성화 땐 금융 이력 없어도 각자 신용에 맞는 대출 가능
개인정보보호 수준을 어떻게 규정하는지가 최대 관건
익명정보 활용 법제화 추진시민단체 등 반대 거셀 듯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은 2014년 빅데이터를 활용한 소액 신용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유은행이 외면한 농촌 거주자나 소상공인이 주 고객이다. 앤트파이낸셜은 개인의 전자상거래 결제, 통신비 납부 내역 등을 분석해 신용등급을 매긴다. 대출 규모는 지난 3월 6000억 위안(약 100조원)을 넘어섰다.

빅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의 ‘원유(原油)’로 불린다. 개인 특성을 분석한 맞춤형 금융상품 개발 등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걸음마 수준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지난해 내놓은 평가결과를 보면 한국의 빅데이터 활용능력 수준은 63개국 중 56위에 그친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 등은 조만간 빅데이터 경제 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원격의료 규제 완화’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규제 완화’에 이어 세 번째 규제 혁신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26일 “하반기에 규제 완화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빅데이터 활성화로 금융소비자의 혜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앤트파이낸셜 사례처럼 청년, 주부 등 금융거래 이력이 거의 없는 ‘신 파일러(thin filer)’도 각자의 신용에 맞는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어떻게 규정할지가 쟁점이다. 현재는 법에서 빅데이터 활용을 위해 필요한 ‘익명정보’나 ‘가명정보’의 개념도 명확하지 않다. 익명정보는 ‘서울에 사는 30대 직장인’ 식으로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정보다. 가명정보는 여기에 직업 등의 정보를 추가한 것이다. 다른 정보와 합칠 경우 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에서는 익명정보를 상업적으로 자유롭게 이용한다. 반면 한국에선 개인 동의가 없으면 익명정보도 쓸 수 없다.

정부가 만든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지난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이 가이드라인에 따랐던 기업 및 공공기관을 고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부는 앞으로 익명정보를 자유롭게 분석·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법제화할 계획이다. 대신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보안원 등 전문기관의 평가를 거치도록 할 예정이다.

그러나 규제 완화를 놓고 상당한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개인정보 보호 규제 완화는 일종의 ‘금기어’나 마찬가지다. 2014년 발생했던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 등 금융회사들의 허술한 개인정보 관리가 빌미를 제공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지난 2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개인정보 몇 개를 암호화했다고 해서 개인을 식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의 기술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개인정보 감독기구 통합 등 안전장치 마련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와 진보야당에서 “문재인정부가 ‘우(右) 클릭’하고 있다”고 비난을 쏟아부을 가능성도 높다. 이미 정부가 의욕을 갖고 추진하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도 대상 업종의 선정 등을 놓고 국회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