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입력 2018-08-26 18:11 수정 2018-08-26 21:33
사진=뉴시스

총수일가 편법적 지배구조 방지 목적, 상장사 한해 합산 15%까지만 허용
개인 피해 땐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재벌 규제 강화는 대부분 반영 안돼, 급진적 아닌 ‘중간 속도’ 개혁 의도
중기 위한다지만 국회통과 난항 예고


정부가 경제정책의 세 축 가운데 하나인 ‘공정경제’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을 추진한다.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는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단계적으로 제한한다. 개인이 불공정 거래 행위로 피해를 봤을 때 법원에 위법행위 중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사인(私人)의 금지청구제’가 도입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26일 밝혔다. 전면 개정 추진은 공정거래법 제정 3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는 법·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계획이다. 재벌 개혁 등 경제민주화에 박차를 가해 중소·중견기업과 소상공인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대기업 규제’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정부의 입법안이 그대로 국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공정위는 총수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더 강하게 막기로 했다. 현재 한도가 없는 대기업 공익법인의 의결권의 경우 상장회사에 한해 특수관계인(총수 일가+계열사) 합산 15%까지만 허용한다. 2년의 유예기간을 둔 뒤 3년에 걸쳐 의결권을 단계적으로 축소(30→25→20→15%)키로 했다.

또 대기업 소속 금융·보험사의 경우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와 무관한 계열사 간 합병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라 대기업 소속 금융·보험사는 임원의 선임 또는 해임, 정관 변경, 합병, 영업 양도 등의 경우 특수관계인 지분 15%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를 앞으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례처럼 총수 일가 지배력 확대 목적의 합병일 때 금융·보험사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막는 것이다.

이밖에 공정위는 독점적 권한을 검찰, 법원, 지방자치단체에 나눠주는 대신 과징금 상한선을 일괄적으로 상향했다. 현재 담합 적발의 90%를 차지하는 경성담합(가격·물량 담합 등 중대한 담합)은 검찰에 우선 조사권이 주어진다. 사인의 금지청구제가 도입되면 공정위 행정심판에 앞서 법원이 불공정행위 중단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이번 전면 개정안은 4개월간 운영된 공정거래법 개정 특별위원회 권고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다만 지주회사 의무지분율 상향 등 대기업집단 규제 강화와 관련된 특위 권고안은 대부분 반영되지 않거나 수정됐다. 공정위는 지주회사의 자회사와 손자회사 의무지분율(현행 상장사 20%, 비상장사 40%)을 10% 포인트 상향하는 방안은 신규로 설립되거나 전환되는 지주회사에만 한정했다. 공정거래특위는 기존 지주회사에도 이를 적용하라고 권고했었다.

‘급진적’이 아닌 ‘중간 속도’로 재벌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김상조(사진) 위원장은 “재벌 개혁을 포함해 모든 문제를 공정거래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기존 인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면서 “법무부의 상법 집단소송제, 금융위원회의 금융 통합감독 시스템,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기획재정부의 세법 개정 등 정부부처의 다양한 법률 수단을 종합 고려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경제민주화의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오는 10월 4일까지 입법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한다. 이후 국무회의를 거쳐 입법안을 11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