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우 박사의 바디 바이블] 골반은 생명을 담아내고 잉태하는 그릇

입력 2018-08-27 00:01
골반은 방광 자궁 결장 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골반이 없으면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고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주님께서 “온 우주 만물의 생명의 근본 바탕”이라고 말씀하신 교회는 인류역사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탄생시키는 ‘골반’ 역할을 했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엑스레이로 촬영한 골반의 모습.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2∼23)

사도 바울은 교회를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라고 증거한다. 교회가 온 우주 만물의 생명의 근본 바탕이라는 뜻이다.

생명을 담아내는 그릇

우리의 몸에는 허리 밑에 골반이 있다. 골반이란 단어는 뼈와 밑받침대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뼈를 받치는 받침대라는 뜻이 된다. 영어로는 ‘Pelvis’라는 단어를 쓰는데 ‘물 그릇’이란 뜻이다. 고대 헬라인들은 골반을 물을 담는 넓고 깊은 물통으로 이해한다. 이처럼 우리 몸의 골반이란 생명을 담아내는 그릇과 관련이 있다.

심장과 폐를 담아내고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 몸에 갈비뼈 12개를 한 쌍으로 주셨다. 비슷한 원리로 허리 밑에 있는 요추 뼈들은 우리 몸의 십이지장 췌장 비장 콩팥을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여러 개의 뼈가 하나로 돼 깔대기 모양의 구조를 가진 골반을 주셔서 방광 자궁 결장 직장을 담아낼 수 있게 하셨다. 골반이 없다면 생식 기능이 불가능하고 생명을 잉태해 낳을 수가 없다.

나는 개신교회가 이 세계 역사의 골반 역할을 했다고 확신한다. 골반이 생명을 잉태하듯이 개신교회는 세계 역사의 수많은 가치들을 역사 속에 출생시켰다. 종교개혁을 통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탄생이 그것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한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뛰어넘어 약한 자를 돌보고, 소외된 자를 끌어안는 ‘인권’의 개념을 이 역사에 주입한 것도 교회의 탄생으로 이뤄진 일이다.

교회, 생명 떠받치는 세계의 골반

교회는 봉건주의 시대를 뛰어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눈부신 발전, 역사의 뿌리를 교회가 잉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제에 정복당한 조선의 정신을 일깨운 것도 개신교회의 신앙이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을 잉태하는 역사에도 개신교 신앙이 깊게 흐르고 있었다. 6·25전쟁 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를 30년 만에 세계 정상으로 올려놓은 산업 발전의 기적 속에도 개신교의 신앙 전통은 살아 역사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생명을 잉태하고 자라게 하고 보존하는 개신교의 가치를 자각해야 한다. 교회가 무너지면 인권의 본질은 사라지고 정치적인 인권 개념만 난무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교회가 무너지면 자유와 민주주의라고 하는 체제가 흔들릴 것이다. 교회가 무너지면 개인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성숙한 시민사회가 무너지고 집단만 강조되는 전체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골반 없는 신체가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듯이 교회가 없는 사회는 자유와 생명과 인권을 창조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이 나라에 더 많은 가치들과 생명들을 잉태하고 있다. 이 나라를 더 복되게 할 축복을 잉태하고 있다. 남편이 출산을 앞둔 임신부를 소중히 여기듯 우리도 이 나라와 세계의 골반인 교회를 사랑하고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생명은 최고의 상위 개념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남자와 여자 두 개의 성(性)을 창조하셨다(창 1:27). 세 개의 성, 네 개의 성, 그 밖에 더 많은 성이 아니라, 두 개의 성을 창조하신 것이다. 골반을 보면 남자와 여자의 골반이 다른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남자의 골반은 여자에 비해 뾰족하며 시각적으로도 아름답지 못하게 창조됐다. 반면에 여성의 골반은 완만하며 아름답고 뭔가를 담아낼 수 있는 구조로 생겼다.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남자가 여자에 비해 키가 큰 것도 골반의 구조와 많은 연관이 있다. 뼈가 굵고 뾰족한 남성이 상대적으로 키가 큰 것도 같은 이유다.

남성의 골반은 고관절 사이가 넓지 않다. 여성에 비해 더 빠른 스피드를 내고 더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다. 반면 여성의 골반은 아기를 담고 낳을 수 있도록 잘 열릴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물론 남성이나 여성의 골반은 기능이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성의 생식기를 안으로 위치하게 만들어서 남성의 생식기를 받아들이고 씨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특화되게 하셨다. 남성은 음낭과 고환을 밖으로 나오게 해서 생식기능을 유지하며 동시에 생명의 씨를 뿌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성경에서 정의하는 남자와 여자의 비유는 ‘씨’와 ‘밭’이다. 스스로 의식하고 있는 정체성으로 남자와 여자가 되는 게 아니다. 씨를 뿌릴 생식기를 가진 자가 남자이고 그 씨를 받을 수 있는 생식기를 가진 자가 여자인 것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의 연합으로 생명의 역사를 이어가도록 해주셨다. 법에서는 하위법이 상위법의 규제를 받는다. 이처럼 인권도 상위에 있는 생명 개념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

인권보다 앞서는 생명의 문제

오늘날 동성애 문제의 핵심은 ‘인권’의 문제이기 이전에 ‘생명’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권은 민주주의의 상위 개념이며, 생명은 인권의 상위 개념이다. 민주주의는 인권을 위한 것이며 인권은 생명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이 생명을 낳고 생육하고 번성해 가는 생명들 가운데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구원하신다. 오늘날 인권이란 개념을 앞세우며 생명을 이어가는 순리를 역행하는 이데올로기가 소리를 높이고 있다. 남자 그리고 여자라고 하는 두 개의 성을 넘어 세 개, 네 개, 그 이상의 성의 논리를 내세우며 인권이란 이름으로 당연시 여기자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2017년 1.05명에서 올 2분기 0.97명으로 떨어졌다. 2017년생들이 약 35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최하위다. 이 수치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생명 출산의 가치가 어느 정도로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해서 그들의 인권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는 생명의 존엄성 아래에서 인권을 존중한다. 그러나 동성애라는 이름으로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데올로기다. 생명을 낳을 수 있는 정상적인 가정을 위축시키는 이데올로기, 나아가 인간의 부도덕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하나님의 주권보다 높이려는 불신앙의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골반에 대한 건강지식

골반이 틀어지거나 균형이 안 맞으면 척추 구조가 변형된다. 장기 기능이 저하되고 허리뼈와 목뼈, 등뼈가 모두 틀어진다. 인체의 좌우 비대칭이 극대화되면 몸의 이상을 감지하는 감각이 둔화되고 회복 능력이 저하된다. 따라서 골반 문제를 빠르게 확인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골반이 아픈 경우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대개 골반통이나 디스크가 문제다. 골반통은 몸의 앞쪽으로 온다. 종양이나 치질, 돌이 생긴 방광석이나 요석도 골반통을 유발한다. 반면에 뒤쪽으로 오는 통증은 디스크일 가능성이 높다.

골반 변형을 확인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거울을 보고 두 팔을 아래로 내리고 섰을 때 양쪽 어깨의 높이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좌우 높이가 다르다면 골반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다.

신발 밑창의 헤어진 부분이 한쪽으로 쏠려 있거나 한쪽 다리가 다른 쪽에 비해 감각이 떨어지고 저린다면 골반 변형일 수 있다. 똑바로 누운 자세에서 양쪽 다리의 길이를 재 보았을 때 차이가 있다면 골반변형일 수 있다. 걸을 때 발을 끌거나 보폭이 좁다면 의심해 봐야한다.

팔자걸음이 되거나 발의 앞부분이 안쪽으로 굽는 경우, 걸을 때 몸이 앞으로 숙여지거나 휘는 경우도 골반 변형을 의심해 봐야한다. 잠을 잘 때 바로 누운 자세가 되지 않는 경우, 허리를 쭉 펴고 앉아 있는 게 버거운 경우도 그렇다.

만약 엉덩이가 아프다면 세 곳이다. 엉덩이의 뼈, 엉덩이 근육, 엉덩이에 있는 신경이다. 엉덩이에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아픈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허리 디스크 협착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치료 후에도 통증이 느껴진다면 신경이 척추에 눌려 엉덩이가 아픈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