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비평가’] 여성은 지식 논쟁의 대상? 남성보다 더 뜨겁고 치열!

입력 2018-08-24 04:03
연극 ‘비평가’의 무대 사진. K아트플래닛 제공

공연이 성황리에 끝난 날 밤, 극작가 스카르파는 극의 성공을 축하해주는 사람들 대신 비평가 볼로디아를 보기 위해 그의 집으로 향한다. 나무 책상 몇 개와 낡은 거울, 모서리가 깨진 유리창이 원로 비평가의 집을 채우고 있는 전부다. 성공한 극작가는 왜 그날 밤 그를 찾아가야만 했던 걸까. 간결해 서늘함마저 느껴지는 무대,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두 인물의 논쟁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남는다.

연극 ‘비평가’를 보기 위해 23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을 찾았다. ‘맨 끝줄 소년’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의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2012년 작품 ‘비평가’는 연극의 본질을 묻는 메타연극이다. ‘극중극’의 독특한 서사 구조와 두 인물의 논쟁을 통해 연극과 현실의 관계, 삶의 의미와 사랑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스카르파가 볼로디아를 찾아간 이유는 성공을 거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10년 전 자신의 첫 작품을 신랄하게 비판한 원로 비평가는 이번에도 만족스럽지 않은 평가를 한다. 계속된 논쟁 속에서 비평가는 연극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을 터무니없는 ‘가짜’라고 비난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작가는 현실 속 인물이라며 반박한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비평가’는 지난해 11월 초연됐다. 당시 남성 배우 2명이 줄거리를 이끌어갔던 이 연극은 독일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오르게 했다. 젊은 작가는 아버지와 같은 원로 비평가의 ‘거세 위협’인 혹평에 맞서 투쟁하고 이 투쟁은 작품 속 인물의 존재 여부, 즉 ‘여성’을 두고 벌어진다.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남성 지식인의 논쟁 사이에서 여성은 이야기의 소재이자 대상일 뿐이었다.

이번 공연은 여성 배우들이 남성 배역을 연기함으로써 이런 남성 중심적 서사 구조를 완전히 뒤집는다. 연극과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을 넘어 고정된 성역할과 젠더 불균형의 문제까지 바라보게 한다. 이영석 연출가는 “여성도 입체적인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여성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김신록(스카르파)과 백현주(볼로디아) 두 배우의 열정적인 연기도 이를 탄탄히 뒷받침한다.

작가는 작품에 “내가 노래할 줄 알면, 나를 구원할 텐데”라는 은유적 문장을 부제로 달았다. 대사로도 계속 반복되는 이 말은 여성과 남성,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진정 하고 싶은 노래는 무엇인가. 당신은 당신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는가.” 공연은 오는 9월 1일까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