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의 사상가 데이비드 소로는 “철학 교수는 있는데 철학자는 없다”고 말했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철학과 신학의 오랜 숙제였던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등산로에서 간간이 들리는 ‘인생 뭐 있나. 그냥 즐기는 거지’ 따위의 찰나적 인생론만 남아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알파고가 21년 차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을 압도하면서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영국 옥스퍼드대 ‘과학과 종교’ 석좌교수로 자연과학과 신학, 현대지성사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50권 넘는 책을 저술한 알리스터 맥그래스 역시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위기의 시대, 미몽에서 깨어나는 시대는 냉소주의와 절망에 빠져들기보다는 우리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것을 요구한다”며 “인간은 그저 존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궁금해하려고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한다.
맥그래스 교수는 이어 “사람들이 궁금해한다는 것은 깊이 생각하는 것, 이미 알려진 내용을 마음속에서 뒤집어 보는 것, 상상력을 확장해 우리가 사는 세상 이면이나 우리 눈 너머에 더 큰 진리와 아름다움이 있지는 않은지 물어보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저자의 인간탐색 도구는 기독교 신앙과 과학이다. 평행선을 달리는 두 영역을 과감하게 조화시키면서 인간 존재의 진실에 접근한다. 그는 기독교 신앙과 과학은 경이감과 외경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 하나님을 향하는 인간의 눈과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모두 경이로움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과 자연을 대하면서 자기 존재의 유한성을 목도한다.
책은 과학자이자 신학자, 역사학자이자 인문학자로서의 저자의 전문성이 도드라진다. 고대 사상부터 현대 과학까지 아우르는 것은 물론이고 GK 체스터턴, 소로, CS 루이스, 아우구스티누스, 피코 델라 미란도라, 아이리스 머독 등 저명한 신학자와 철학자의 인간론을 인용한다. 저자의 논쟁 상대였던 전투적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와의 대화도 소개하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인이 된 저자 자신의 이야기도 언급한다.
맥그래스 교수는 인간 스스로는 경이로움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며 큰 그림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길을 가는 존재라고 결론을 내린다. 의미를 찾는 인간 여정 속에는 ‘저기 한 분’이 계시다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신앙·과학의 두 눈으로 ‘인간 실존’을 탐구하다
입력 2018-08-2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