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서로의 생사도 모른 채 떨어져 살아야 했던 남북 이산가족에게 주어진 12시간은 60여년의 그리움을 달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1차 상봉단은 22일 울음과 탄식이 가득한 현장에서 또다시 기약 없는 이별과 마주해야 했다.
북쪽에 두고 온 7살 어린 여동생과 만난 김병오(88) 할아버지는 눈앞에 다가온 이별을 준비하듯 아침 내내 말이 없었다. 오전 10시 김 할아버지는 북한 금강산호텔에 마련된 작별상봉장에 들어서자마자 허공을 응시하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여든이 넘은 여동생 순옥(81)씨가 “오빠 울지 마, 울면 안돼”라며 오빠의 손을 잡았지만 김 할아버지는 옆자리에 앉은 여동생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10분 넘게 한마디도 하지 못한 김 할아버지는 “하이고…”라며 짧은 탄식을 내뱉은 뒤 여동생을 바라보며 또 울었다.
북쪽의 두 여동생을 만난 김춘식(80) 할아버지도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손수건을 들고 오빠를 기다리던 춘실(77) 춘녀(71)씨 자매는 김 할아버지가 상봉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김 할아버지는 긴 울음 끝에 두 여동생을 향해 “오래 살아야 해. 그래야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어”라며 힘겹게 말했다.
백세를 바라보는 남쪽 어머니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한신자(99) 할머니는 한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던 북쪽의 두 딸에게 “찹쌀 같은 게 영양이 좋으니 그런 걸 잘 먹어야 한다”며 건강하고 행복하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한 할머니는 “내가 너희들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걸 너희가 알아야 해”라고 했다. 3살 때 헤어진 아들과 68년 만에 만난 이금섬(92) 할머니는 12시간의 기적 같았던 재회가 이제 끝난다는 사실을 절감한 듯 작별상봉장에 들어오자마자 아들 상철(71)씨의 손과 얼굴을 어루만졌다.
경기도 김포에 사는 신재천(92) 할아버지는 개성에 산다는 여동생 금순(70)씨가 “개성에서 김포가 금방이지 않느냐”고 하자 “차 가지고 가면 40분이면 돼. 왕래가 되면 금방 가는데…”라며 아쉬움을 삼켰다.
긴 이별을 앞둔 이산가족들은 서로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헤어진 뒤에 기억할 수 있도록 디지털카메라와 즉석카메라 등으로 서로의 모습을 남겼다.
“상봉이 모두 끝났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상봉장 여기저기서 오열이 터졌다. 남북 가족들은 ‘고향의 봄’ ‘아리랑’ 등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이별의 슬픔을 달랬다. 이기순(91) 할아버지가 아버지 없이 자란 북쪽 아들 강선(75)씨를 끌어안으며 “나 가짜 아버지 아니야. 너 아버지 있어”라고 말하자 강선씨는 “건강하고 오래 사시라요. 그래야 또 만나지요”라고 답했다.
한신자 할머니의 두 딸은 버스 밖에서 가족을 배웅해도 된다는 안내가 나오자마자 한복 치마를 발목 위까지 걷어올리고 급하게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버스에 앉아 있던 한 할머니는 창문을 두드리며 두 딸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딸들은 “오마니 오마니 건강하시라요”라며 창밖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최동규(84) 할아버지의 북측 조카 박춘화(58·여)씨는 버스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이렇게 기막힌 게 어딨니. 통일되면 이런 거 안 해도 되잖아. 이게 뭐야”라며 울부짖었다. 이관주(93) 할아버지의 조카 광필(61)씨는 창문이 열리지 않아 대화가 통하지 않자 자신의 손바닥에 ‘장수하세요’라고 적어 창문에 대곤 펑펑 울며 작별인사를 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최승욱 이상헌 기자 applesu@kmib.co.kr
“언제 또…” 이산가족 다시 기약없는 이별
입력 2018-08-23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