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 가득한 공정위 “검찰이 들췄다가 버린 사건만 조사하는 셈”

입력 2018-08-22 04:01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오른쪽)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속고발제 폐지 합의문’에 서명을 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가 전속고발제 폐지에 합의하면서 담합 사건을 조사하고 처벌하는 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게 됐다. 겉보기엔 ‘공정위 독점’이 깨지고 선의의 경쟁관계가 형성됐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다르다. 사실상 조사권한의 무게중심이 검찰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향후 검찰 주도의 담합 조사가 성공할지는 자진신고자 감경제도(리니언시)가 제대로 작동할지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공정위와 법무부의 합의안에 따르면 ‘선(先) 공정위 과징금 부과, 후(後) 검찰 형사 처벌’이라는 기존 담합 조사의 구조는 180도 달라진다. 적발된 담합 사건의 90%가량은 리니언시에 기인한다. 지난해 공정위가 행정처분한 담합사건 51건 가운데 41건은 리니언시로부터 촉발됐다. 이제껏 리니언시 정보는 검찰이 열어볼 수 없는 공정위 내부의 ‘비밀 캐비닛’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두 기관은 리니언시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게 된다. 리니언시를 통해 입수한 담합 사건 중 국민적 관심이 크고, 사회적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중요 사건이라고 판단되면 검찰이 조사 우선권을 갖는다. 이중조사 방지를 위해 검찰이 사건을 마무리 짓기 전에 공정위는 조사에 나설 수 없다. 검찰이 조사를 마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한 뒤에야 공정위는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과징금 부과 등 행정처분을 할 수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실상 검찰이 들췄다가 버린 사건만 공정위가 조사하게 되는 셈”이라며 “공정위는 서류상 일만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가 앞으로 담합 적발률을 높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공정위의 담합 사건 독점구조가 깨져 누구든 담합 혐의자를 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담합 조사·수사가 활성화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압수수색 등 검찰이 강제수사에 착수하기 전에 서둘러 리니언시를 이용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바뀐 제도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리니언시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기업 관계자는 “리니언시는 안정성과 지속성이 생명”이라며 “새롭게 바뀐 리니언시에 따라 제대로 혜택을 보는 것이 확인된 뒤에야 기업들이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합의안에서 경찰이 배제된 것도 논란거리다.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기 전까지 검찰과 경찰은 건설산업기본법 상 입찰방해 혐의를 명목으로 ‘개별적인 담합 조사’를 해왔다. 그런데 이번 합의로 경찰은 담합의 조사 주체에서 빠졌다.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검찰과 경찰의 이중조사를 막았다고 설명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전속고발제 폐지 논의 과정에서 검찰이 경찰의 담합조사 참여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면서 “담합 조사의 독점을 깬다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위상이 강화된 경찰을 뺀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