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바람에… 은행, 성장은 했지만 일자리 줄었다

입력 2018-08-22 04:00

성장은 했지만 일자리는 줄었다. 디지털화에 속도를 내는 글로벌 은행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스웨덴 4대 은행 중 하나인 노르디아(Nordea)는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 증가했다. 비결은 ‘인력 축소’다. 로봇을 이용해 금융 자동화시스템을 확대하는 대신 직원을 줄였다. 노르디아는 지난해 10월 직원 6000여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3분기 3만2000여명이었던 직원 수는 올 2분기 2만9271명까지 떨어졌다. 노르디아는 앞으로 10년 내 인력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다른 은행도 디지털 전환, 인력 감축이라는 흐름을 따르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기업은행(SEB AB)의 최고경영자 요한 토르비는 최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동화할 수 있는 업무는 모두 자동화가 될 것”이라고 했다. ‘수익이 늘면 고용도 증가한다’는 상식이 디지털화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등 미국 상업은행들은 “디지털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는 방침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디지털 바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송재만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21일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글로벌 은행들’ 보고서를 통해 “국내 은행도 차별화된 디지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향후 은행의 수익과 성장이 디지털 전환에 달렸다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기관 맥킨지는 핀테크(정보기술을 융합한 금융서비스) 발전으로 2025년 은행권 소비자금융 부문 수익이 2015년 대비 4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급결제(-30%)나 중소기업 대출(-25%), 자산관리(-15%) 부문에서도 수익이 줄 것으로 예상했다.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일자리는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국내 은행권의 경우 올 상반기에 순이익 8조원을 거뒀지만 전체 인력은 오히려 줄었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의 지난 6월 말 기준 직원 수는 총 5만9591명으로 지난해 6월(6만1754명)보다 3.5% 감소했다.

은행권은 하반기에 3100명 규모의 청년 채용을 실시할 예정인데, 상반기에 이미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퇴사 인력을 통해 신규 채용 여력을 확보하는 식이다. 송 연구위원은 “글로벌 은행들처럼 국내 은행도 디지털 전환에 따라 중장기적인 인력 감축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여기에다 은행 점포의 감소세도 뚜렷하다. 은행들은 ‘스마트텔러머신(STM)’ 등 점포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자동화시스템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직원이 없는 ‘무인점포’도 시범운영 중이다. 4대 시중은행의 올 상반기 국내 지점 수는 3572개로 전년 동기 대비 100곳, 2016년 상반기보다 269곳 줄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은행창구 이용 비중은 9.5% 수준에 그친 반면 인터넷뱅킹 이용 비중은 46.2%나 됐다.

금융 당국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디지털 전환이란 거대한 흐름 속에서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행원 1명당 업무량이 증가하면서 현장에서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인력 감축 추세는 쉽게 돌아서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