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품은 아이들 <8>] 말 못할 거라던 아이, 13년 만에 말문 터져

입력 2018-08-22 00:01
김지윤(신일교회) 집사가 20일 서울 강북구 자택에서 낱말카드 읽기 연습을 하는 아들 유환이(청각·지적장애 1급)군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귀와 머리에 어음처리기를 착용한 유군의 모습. 밀알복지재단 제공
“우리 환이, 이거 한번 읽어볼까?” “나아비(나비).” “그럼 이건?” “두우박(수박).” “잘했어 하이파이브!”

유환이(14·청각·지적장애 1급)군과 어머니 김지윤(41·신일교회) 집사에겐 최근 신나는 놀이시간이 생겼다. 그림이 그려진 낱말카드로 읽기 연습을 하는 것이다. 비장애인 중학생에겐 특별할 것 없는 일이지만 환이에겐 기적 같은 장면이다.

“처음엔 발달 속도가 좀 더딘가 보다 싶었어요. 그런데 생후 3개월이 지나도록 고개 한 번을 들지 못하고 사방에서 박수를 쳐도 아무 반응이 없더군요.”

다급하게 병원을 찾아 갔지만 “평생 양쪽 귀로 들을 수 없을 것”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인공와우 이식수술(달팽이관 질환으로 난청이 발생했을 때 인공 달팽이관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기엔 작기만 한 체구. 환이는 몸무게가 10㎏이 될 때까지 영아용 보청기를 낀 채 10개월을 버텨야 했다.

기다림 끝에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지만 환이는 반쪽짜리 수술을 받아야 했다. 비싼 수술비가 발목을 잡았다. 한쪽 귀에 인공와우를 이식하는 데만 3000만원, 건강보험을 적용받아도 600만원이 드는데 당시엔 양쪽이 아닌 한쪽만 보험이 적용됐다. 일단 오른쪽만 수술하고 왼쪽은 미뤄뒀다. 김 집사는 “양쪽이 함께 이식되지 못해서인지 환이는 수술 후 ‘고개가 한쪽으로 꺾인 아이’로 살아야 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환이의 고개가 바로 세워진 건 첫 수술 후 6년 만에 왼쪽 귀에 인공와우를 이식하고 나서였다. 이후 각종 치료시설을 찾아다니며 무던히 애를 썼지만 굳게 닫힌 아들의 입은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상담실에선 “앞으로도 말하기 힘들 테니 헛된 희망은 내려놓으라”는 소견만 반복했다. 김 집사는 “돌아보면 거듭된 절망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이 아들을 향한 간절한 기도였다”고 회상했다. 간절한 기도는 결국 기적의 열매로 돌아왔다.

“지난해 초 치료사에게서 갑작스레 전화가 왔어요. 환이가 언어치료 중에 ‘바나나’라고 분명히 말을 했다고요. 얘기를 들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는데 선생님이 환이 목소리를 녹음해 들려주고 나서야 실감이 났어요. 방언이 터질 때 이런 느낌일까 싶었죠.”

언어치료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듣게 된 아들의 목소리였다. 올해 초부터는 글자를 그림처럼 인식해 단어를 읽고, 짧은 문장을 말하는 수준까지 실력이 늘었다. 의료진도 환이의 거듭되는 호전에 관심이 높아졌다.

“운동치료를 병행하면 인지·언어능력이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 집사에겐 최근 이어지는 희망적 소견이 반갑지만은 않다. 아들의 치료 횟수를 늘려주지 못하는 형편 때문이다. 장애수당과 한부모 양육비 지원금으로 받는 60만원이 환이네 고정 수입의 전부다. 김 집사가 장애인활동보조 도우미로 일하면서 살림에 보태고 있지만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환이가 7년여간 사용해 온 어음처리기(소리를 모아 인공와우에 전달해주는 장치)가 요즘 들어 자주 꺼지는 것도 걱정거리다. 수리하거나 새로 구입하려면 수 백만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잠시 숨을 고른 김 집사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환이의 태명이 라이언이었어요. 동물의 왕 사자처럼 왕 같은 제사장이 되라고요.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이 제사장처럼 쓰임 받을 환이를 위해 또 다른 기적을 예비해두셨을 거라 믿어요.”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기적을 품은 아이들' 7회차 성금 보내주신 분(2018년 7월 18일∼8월 21일)

△김병윤(하람산업) 홍상선(활초관광농원) 20만원 △조동환 박순희 10만원 △조성선 김정숙 정정호(광명테크) 권경희 연용제 현광수 송은영 한승우 권은미 5만원 △진성복 신영희 김덕수 최정윤 3만원 △김기주 예수님 2만원 △김애선 1만원

◇일시후원: KEB하나은행 303-890014-95604(예금주: 밀알복지재단)

◇정기후원 및 후원문의: 1899-47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