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방향 전환 불가피, 혁신성장에 힘 실으며 분배·성장 균형

입력 2018-08-22 04:04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김 부총리는 악화된 고용상황이 이른 시간 안에 회복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트레이드마크’ 소득주도성장이 1년 만에 한계점에 봉착했다. 다른 축인 혁신성장을 제쳐두고 홀로 달렸던 부작용이 경제지표로 드러나고 있어서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거침없는 근로시간 단축 정책으로 제조업 경기는 위축되고 있다. 고용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의 균형 없이는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이 ‘경제정책 방향 수정’으로 이어지게 됐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하며 3가지 방향타를 내놨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그것이다. 지난 1년간 경제정책의 초점은 이 가운데 소득주도성장에 맞춰졌다. ‘근로자 소득 증대→소비 창출→투자 증가→일자리 창출’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했다.

신호탄은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지난해 7월 정부는 올해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16.4%나 오른 7530원으로 결정했다. 최저임금 수준인 근로자들의 임금이 증가하면 자연히 소비도 늘어날 것이란 계산이 바탕에 깔렸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10.6% 인상으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647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8350원까지 오르게 된다. 여기에 주 52시간 근로 시대를 열면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질주했다.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전체 근로자 소득 증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과속’은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인건비 상승을 부를 수밖에 없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1일 “기업 입장에선 비용 증가 속도가 이익 증가 속도보다 가파르면 당연히 곳간을 닫는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응해 일자리를 늘리지 않거나 되레 줄이는 쪽으로 움직이면서 애초 목표했던 선순환 고리가 성립하지 않게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제조업 경기는 최근 들어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지난 6월 제조업 생산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0.8% 감소했다. 여기에다 5월과 6월에 각각 -3.7%, -13.8% 줄어든 설비투자는 기업들의 비관적인 전망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타격은 고스란히 일자리로 향했다. 올 들어 10만명 수준으로 쪼그라든 취업자 수 증가폭은 급기야 지난달 5000명에 그쳤다.

정부는 3조원 규모의 일자리안정자금과 두 차례 ‘일자리 추가경정예산’ 편성·집행 등의 지원책으로 부작용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주체들의 비관적 심리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재정을 투입한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때문에 정부는 ‘혁신성장 카드’를 꺼내들게 됐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경제정책 방향의 수정이라는 신호를 주는 것만으로도 현재 각 경제주체들이 처해 있는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걷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뼈대는 ‘규제 완화’ ‘기업 투자 활성화’다. 정부가 민간과 합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혁신성장본부가 혁신성장의 컨트롤타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신성장 사업으로의 진출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풀 전망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도 혁신성장을 중심에 두고 편성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혁신성장을 위한 연구·개발(R&D) 사업에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일찌감치 공언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공유경제 등 플랫폼 경제와 8대 선도사업을 지정해 5조원의 재정을 투자하겠다는 전략도 제시했다.

반면 소득주도성장은 당분간 숨고르기가 불가피하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고 기업이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할 수 있도록 탄력적 근로제를 도입하는 등의 보완책을 시행할 여지가 커졌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