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결승에 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죠. 예선을 잘 뛰어서, 8강이나 4강이 아닌 결승에서 만나 다행입니다.”
지난 20일(한국시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펜싱 사브르 개인전 메달 수여식이 마무리된 자카르타 컨벤션센터.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는 구본길(29·오른쪽)과 오상욱(22·왼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상주(50·가운데) 펜싱 국가대표팀 코치가 모자를 고쳐 쓰며 말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선수들을 독려하던 그는 구본길과 오상욱의 결승전에는 조용했다. 어느 한 쪽을 택할 수 없었고, 두 선수에게 “선의의 경쟁을 하라”는 말만 남기고 경기장 뒤편에 멀찍이 앉아 있었다.
코치의 마음이 불편하도록 두 제자는 14-14에서 마지막 한 포인트로 금메달을 결정하는 명승부를 펼쳤다. 이윽고 은메달이 결정된 오상욱은 한동안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유 코치는 둘 모두에게 양보할 이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구본길은 3연패를 해야 했고, 오상욱은 병역 혜택이 절실했다”고 말했다.
공동의 목표로 남은 것은 단체전이다. 메달 색깔이 갈린 순간 구본길은 오상욱을 끌어안고 “단체전에서는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자”고 말했다. 유 코치는 “올해 모든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있다. 단체전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단체전 금메달을 자신하는 이유는 체력이다. 유 코치는 “지옥훈련은 하지 않지만, 달리기를 많이 한다”고 대표팀 훈련 방식을 소개했다.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져 보이면 무조건 2시간이든 3시간이든 달리게 하는 것이 유 코치의 지도 방식이다. 그는 “일단 달리기를 많이 한 뒤에야 칼의 감각을 쌓기 시작한다. 경기는 맨 마지막이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한국 펜싱 대표팀의 특징은 메디컬 타임(경기 중 치료 시간) 5분을 자주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 코치는 “메디컬 타임 요청은 기술은 아니더라도 전술은 된다”고 말했다. 여자 플뢰레 개인전 금메달리스트가 된 전희숙(34)은 결승전 도중 메디컬 타임을 요청했고, 오상욱도 14-14로 맞선 준결승전 마지막 순간 메디컬 타임을 불렀다.
메디컬 타임 이후 둘의 결과는 모두 성공적이었다. 전희숙은 왼쪽 손목의 테이핑을 교체한 뒤 3-3에서 내리 5득점했다. 오상욱도 마지막 공격을 성공시켰다.
유 코치는 오상욱의 준결승전 당시 ‘할 수 있어’를 계속 외쳤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남자 에페 박상영(23)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할 수 있다’의 주인공은 사실 유 코치였다. 결승전 막판 10-14로 박상영이 벼랑 끝에 몰린 순간 유 코치는 욕설도 하고 ‘할 수 있다’는 격려도 했다. 이에 박상영이 무의식적으로 그 말을 되뇌었던 것이다. 유 코치는 “선수들이 원칙을 망각해 실점하지 않도록 계속 떠드는 게 나의 일”이라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소리를 지를 것”이라고 말했다.
자카르타=이경원 기자
유상주 국가대표팀 코치 “한국 펜싱팀 지옥훈련 않지만 달리기 많이 하죠”
입력 2018-08-21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