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기법으로 설교하고 성경을 읽는 행위는 전통적 교회에 익숙한 기독교인에게는 아직 낯설다. 하지만 불확실하고 공허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겐 오히려 신선한 감동을 줄 수 있다. 문학이 주는 심미적 감동과 풍부함으로 복음이 더 선명히 드러나고 그 메시지가 사람들 마음에 스며드는 것이다. ‘우리 시대 독창적 스토리텔러’로 꼽히는 프레드릭 비크너와 신학자 카일 키퍼의 저작은 무종교 시대를 꿰뚫는 복음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해준다.
비극이고 희극이고 동화인 복음
진리를 말하다/프레드릭 비크너 지음/오현미 옮김/비아토르
슬프고 곤혹스러운 혼돈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진리를 좀 더 명확하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통적인 기독교 언어와 이미지를 최대한 피하며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전해온 저자는 복음을 비극으로, 희극으로, 동화로 생각해 볼 때 복음의 ‘전복성’이 잘 드러난다고 말한다.
복음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어리석은 존재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비극이다. 그럼에도 복음은 인간이 사랑받고, 소중히 여김을 받으며 죄 사함을 받는다는 소식이다. 이는 희극이다. 또 복음은 무지한 인간이 죄 가운데서 믿지 않거나 거부한다 할지라도 그 인생에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이는 동화이다. 복음은 비극이고 희극이고 동화다. 이 책의 핵심은 “복음을 설교하는 일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복음을 설교한다는 것은 그냥 진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이며, 사랑으로 진리를 말한다는 것은 자신이 말하는 진리뿐 아니라 그 진리를 듣는 사람들에 대한 염려와 관심으로 진리를 말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비극이고 희극이고 동화인 진리를 듣는 사람들까지 늘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19쪽)
저자가 말하는 설교자의 책임은 하나님이 부재하는 세상과 인간의 비참한 실상을 정직하게 대면토록 하고, 하나님께서 가장 무력해 보이는 곳에서 가장 강하시고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하는 곳에 가장 온전하게 임하신다는 희극적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설교자는 희극이라는 수단으로 압도적인 비극을 설교해야 한다. 빛으로써 어둠을, 특별함으로써 평범함을 설교하는 것이다. 너무 엄청난 일이어서 잘 믿기지 않는 동화처럼 말이다.
“복음에는 그림 형제의 동화 못지않게 많은 위험과 어둠이 등장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거기에는 기쁨도 함께 등장한다. 어둠도 이기지 못하는 빛이 세상으로 뚫고 들어온다는 이 동화에는 말이다. 그것이 복음이다. 어둠과 빛이 만나는 것, 그리고 빛이 최종 승리한다는 것. 그것이 복음의 동화이다.”(148쪽)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성경의 사건과 인물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생생하게 복원해 그 행간에 드리워진 메시지를 채굴해낸다. 헨리 워드 비처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으로 시작된 이야기에는 구약의 선지자들, 예수와 바울, 계시록의 천사들은 물론 찰리 채플린, 카뮈와 사르트르, 제라드 맨리 홉킨스가 등장하는가 하면 오즈의 마법사를 비롯한 온갖 동화 속 인물까지 호출된다. 또 종종 따라가기 힘든 상상과 비약, 상징이 등장해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저자가 왜 “복음은 비극이고 희곡이고 동화다”라고 주장하는지를 공감하게 된다.
미국의 작가이자 목사인 저자는 1981년 ‘고드릭’으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30권 넘는 그의 책은 전 세계에서 27개 넘는 언어로 출판됐다. ‘우리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스토리텔러’라는 세간의 평대로 진부한 종교 언어를 지양하고 자신의 신앙을 표현할 새롭고도 적실한 언어를 찾으려 분투한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문학적 눈으로 낯설게 읽는 신약
신약-문학으로 읽는 신약성서/카일 키퍼 지음/김학철·이승호 옮김/비아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논문이나 신문 기사를 읽을 때와는 다르다. 본문 자체의 언어와 문학적 특성에 초점을 맞춰 읽어가는 진지함이 요구된다. 독자들의 이 같은 수고는 심미적 감동을 얻음으로써 보상을 받는다. 위대한 작품의 풍부한 문체와 스토리에 담긴 심오함 앞에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이다.
성경을 문학의 눈으로 읽으면 어떨까. 기독교인에겐 다소 낯선 접근일 수 있다. 신자들은 성경의 장르와 상관없이 교훈적 메시지를 발견하려고 애써 왔기 때문이다. 교회의 행동규범이나 교리는 그렇게 해서 확립됐다. 이 책은 ‘문학적 연구’라는 렌즈로 신약성경을 읽을 때 더 역동적으로 읽을 수 있다고 소개한다.
미국 에머리대와 에커드대 교수를 지낸 저자 카일 키퍼는 복음서와 바울 서신, 요한계시록과 같은 신약 문헌들이 문학작품으로서 어떠한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살핀다. 서구의 고전 문학들이 신약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하나의 책으로서 신약성서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도 해명한다. 저자는 문학비평이라는 방법론이 등장하기 전에도 인류는 문학적으로 성경을 읽어 왔으며 문학이라는 눈으로 성경을 대할 때 이전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풍요로움과 만날 수 있다고 안내한다. 문체나 구조 등 문학적 형식을 통해 성경의 내용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작품을 연구할 때 성경은 온갖 재료를 쌓아둔 창고와 같다. 위대한 서양문화 속에 성경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책과 연극, 시와 에세이 등엔 성경의 모티브로 가득하다. 단테나 초서의 작품은 신약을 자신들의 문학작품에 활용한 대표적 사례다.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는 성경 본문을 낯설게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성경을 기독교적 교훈을 얻는 것 이상으로 풍성하게 읽게 한다.
저자는 복음서 저자들이 ‘기자’라기보다는 예술가나 논객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예수의 모습 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와 문체, 구조, 단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음악과 그림, 영화와 같은 예술작품을 창작물이라 부르듯 복음서 저자의 작품은 미학적 창작물이라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신약 27권 중 20권이 서신서다. 편지글은 개인적인 정보를 담고 있지만 급하게 휘갈긴 메모가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쓰인 수사학적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는 편지 쓰기의 역동적인 면모가 드러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로마 시대 유대교와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대중적 문학 장르였다. 묵시문학으로 불린다. 환상 경험, 천사와 악마, 우화적 괴물과 피조물, 천상의 여행 등이 특징이다. 계시록에는 이러한 묵시문학의 요소들이 담겨 있다.
저자는 신약성경의 여러 저자가 다양한 환경에서 책을 저술했기 때문에 성경을 역사적 사건에 관한 기록뿐 아니라 문학적 작품으로 읽는 훈련을 함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문학의 렌즈로 읽는 성경… 행간의 메시지가 보인다
입력 2018-08-24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