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군에 헬리콥터를 요청해 구호물자를 싣고 들어가는 방법과 소형 보트를 이용하는 방법 모두를 알아봅시다. 1만여명이 있는 세남노이 이재민 캠프에 구호물자를 전달하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지난 15일 라오스 남부 아타푸주의 한 마을에 모인 한국인 선교사와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사업가 등은 폭우로 길이 끊겨 고립된 세남노이 이재민 캠프에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방법을 두고 장시간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지난달 23일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댐이 붕괴된 직후 이재민 구호를 위한 비상대책반을 꾸리는 등 파송 교단·단체의 벽을 넘어 협력하고 있다. 평소 현지 교회와 교류·협력, 지역사회 개발과 교육, 스포츠 등으로 제각각 활동해 오다 큰 재난 앞에 힘을 모은 것이다. 라오스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은 재난 현장과 외부에서 오는 도움의 손길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데 적임자들이다.
이재민들의 필요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이들은 ‘맞춤형 구호품’을 마련했다. ‘생선간장’과 ‘세탁기’가 대표적이다. 아타푸주에서 사역하는 A선교사는 “외부에서 구호물자가 많이 들어가도 이분들이 평소 먹던 음식이 아니어서 어려움이 있다”면서 “한국인들에게 스파게티나 피자 같은 음식을 긴급 공수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세남노이 이재민 캠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선간장을 공수해 구호품에 넣고 있는데 현지인들은 이 간장만 있어도 식사를 할 정도로 좋아한다”면서 “실제로 이재민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세탁기 20대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B선교사는 “모든 게 부족한 이재민 캠프에서 세탁까지 하는 건 쉽지 않다”면서 “특히 이재민들이 댐 붕괴로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물가에 가는 걸 꺼리다 보니 빨래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귀띔했다. 이어 “선교사들이 세탁기를 마련해 대신 빨래를 해 주기로 했다”면서 “세탁기를 준비하는 대로 현장에 갖고 갈 예정”이라고 했다.
댐이 붕괴된 후 고립된 아타푸주 삔동 마을엔 지난 14일 독일 선교사들이 달려갔다. 이 마을엔 278명이 머물고 있다. 선교단체 SFE 소속 선교사들은 사륜구동 차량에 구호물자를 가득 싣고 바지선을 띄워 삔동으로 가 ‘긴급 심방’을 마쳤다.
라오스의 유일한 개신교단인 라오스복음교회(LEC) 총회는 이재민 캠프에 우물을 파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총회 관계자는 “댐 붕괴와 폭우로 사방에 물이 넘쳐나지만 마실 물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 500㎖ 생수 세 통을 나눠주고 있다”면서 “앞으로 최소 2년간 계속 지급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우물 파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각국 선교사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에 몇 가지를 당부했다. C선교사는 “최근 세남노이 캠프에 한 개신교 단체가 방문했는데 매우 자극적인 선교적 내용을 담은 현수막을 걸어 문제 된 일이 있었다”면서 “현장을 모르고 왔더라도 활동하기 전엔 선교사들과 상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D선교사도 “큰 재난을 겪었지만 중앙정부의 통제권 아래 있는데다 라오스는 무엇보다 공산주의 국가”라면서 “상황에 따라 심각한 제재가 예상되는 만큼 현지 선교사들과 충분히 대화한 뒤 봉사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타푸주를 방문한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실사단은 지난 13일 1차 구호금 1만 달러(1129만원)를 LEC 총회에 전달했다. 한교봉과 한교총은 공동 모금을 진행해 모은 구호금으로 라오스 이재민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천영철 한교봉 사무총장은 “2차 구호금은 한인 선교사 등에게 전달해 이재민들이 긴급히 필요로 하는 물품 등을 지원할 예정”이라며 “단기간에 복구가 마무리되기 어려운 만큼 긴 안목으로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다.
▒ 라오스복음교회 총회 캄뎅 코운타판야 부총회장
“희망 잃은 이재민들… 한국교회 관심 절실”
“댐 붕괴로 라오스 아타푸주 사람들은 희망을 잃었습니다. 농사짓는 이들에게 땅이 사라졌으니 어떤 꿈을 꿀 수 있겠습니까.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지난 13일 오전 라오스 비엔티안의 라오스복음교회(LEC) 총회 본부에서 만난 캄뎅 코운타판야(사진) 부총회장은 아타푸주 이재민 캠프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이날 캄폰 쿤타판야 총회장은 캐나다로 이주한 라오스인을 대상으로 한 부흥회 인도를 위해 출국했다.
코운타판야 부총회장은 “사고가 난 지역에 33가족, 128명의 기독교인이 있다”면서 “이들은 현재 세남노이의 돈두교회와 반복교회, 뱅빌라이교회에 분산 수용돼 있다”고 했다. 사고가 난 뒤에도 아타푸주를 담당하고 있는 목회자가 30여㎞의 비포장도로를 오가며 천막예배를 드리고 있다. 하지만 지난 15일 내린 폭우로 세남노이 이재민 캠프로 가는 길이 끊어지면서 이마저도 당분간 중단됐다. 코운타판야 부총회장은 “한국교회가 보내 준 긴급구호자금에 감사드리며 생필품을 구입해 배나 헬리콥터 편으로 이재민 캠프에 전달하겠다”고 전했다.
LEC는 2030년까지 라오스에 600개의 교회를 더 세우고 기독교인 비율도 1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1902년 스위스형제교단 소속 의료선교사가 복음을 전한 것에 뿌리를 두고 있는 LEC는 미국 ‘크리스천 앤드 미셔너리 얼라이언스’(C&MA) 교단이 파송한 선교사들이 사역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1975년 8월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활동이 대폭 제한되는 등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현재 라오스 전체 인구 690여만명 중 기독교인(가톨릭 포함)은 3% 남짓으로 추산된다. 현재 LEC 산하엔 900여개의 교회가 있다. 이 가운데 70%가 가정교회 형태를 띠고 있을 정도로 열악하다. 자체 신학교가 없어 목회자들이 태국이나 홍콩, 싱가포르에서 신학 수업을 마친 뒤 안수를 받고 있어 목회자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아타푸주·비엔티안(라오스)=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폭우로 길 끊긴 라오스 이재민 캠프, 긴급구호 군사작전 방불
입력 2018-08-22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