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의 시간

입력 2018-08-21 04:00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금강산에서 만났다. 2015년 이후 3년 만이다. 양측 당국을 통한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부터 시작됐다. 간헐적인 상봉 행사를 기다리고 그 기회를 얻으려 20년 가까이 애태운 이들은 많이 늙어 있었다. 남측 상봉자 89명 중 상당수는 90대였다. 이기순(91)씨는 북에서 낳은 아들을 67년 만에 다시 안았다. 6남매 중 혼자 월남했던 김한일(91)씨는 북의 여동생에게 “장남이 집을 떠나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했다. 북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나려 평생을 기다려 온 백민준(93)씨는 아들 대신 손주와 상봉했다. 손주는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고 왔다. 직계가족이 이미 사망해 조카와 만나는 경우가 유독 많은 이번 상봉은 이산가족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지금까지 상봉의 꿈을 이룬 것은 4000가족이 조금 넘는다. 통일부에 이산가족으로 등록한 13만2603명 중 7만5741명이 세상을 떠났고 남아 있는 5만6862명도 62%가 80세 이상 고령자다. 오랜 기다림 끝에 조카와 상봉한 이관주(93)씨는 “내래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에 만나면 죽을 때까지 못 보는 거야”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27 판문점 회담에서 남북 관계 개선의 속도를 나란히 강조했다. 이산가족 문제야말로 속도전이 필요하다. 어쩌다 한 번씩 100명 정도가 잠시 만나는 방식으로는 분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늘 얘기해 왔지만 성사되지 못했던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상설화를 이뤄내야 한다. 이산가족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돼선 안 되는 문제다. 남북 모두 한반도 평화를 말하는 상황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이슈일 것이다. 이 기회를 살려 오랜 숙원을 풀어야 한다. 전면적인 생사 확인부터 시작하자.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올여름 이산가족 생존자 전원을 대상으로 ‘생사 확인 수요조사’를 실시했다. 향후 남북이 모든 이산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로 합의할 경우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였다. 조사에 응한 이들은 희망을 품게 됐을 것이다. 다시 좌절을 맛보게 할 수는 없다. 관건은 북한의 태도다. 이것이 비핵화 이슈와 별개인 인도적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생사 확인을 거쳐 서신 왕래, 전화 상봉, 화상 상봉 등의 길을 열어줘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랠 수 있다.

다음 달 평양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런 논의를 발전시킬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면 상봉 정례화와 상설 면회소 설치에 대한 북측의 동의를 반드시 끌어내야 한다. 이산가족의 최대 염원인 고향 방문도 테이블에 올려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해야겠다. 이산가족은 남과 북이 똑같이 겪고 있는 아픔이다. 그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 진전된 결과물이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