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북한이 맞닿아 있는 중국 지린(吉林)성 훈춘(琿春)시는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잇는 관문으로 오래전부터 주목받았다. 중국 정부는 훈춘을 동북아 국제도시로 키우겠다고 하지만 태평양을 지척에 두고 러시아와 북한에 막혀 있다. 훈춘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지난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북한 수산물 수입이 끊기고 각종 교역량이 줄면서 훈춘은 다시 암울해졌지만 올 들어 한반도에 평화 무드가 찾아오면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다.
국민일보 취재진은 17일 오후 3시쯤 훈춘에서 북한 나선특별시 원정리로 가는 길목인 취안허(圈河) 세관을 방문했다. 이곳에선 중국인 관광객을 실은 관광버스와 택시, 승용차, 북한을 다녀오는 관광객들이 한데 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세관 앞에서 관광객을 태우거나 내려주는 관광버스만 6대였다. 관광버스마다 빈자리 없이 꽉 채워져 있었다. 불과 20분 만에 세관 앞에서 본 관광객만 300명 정도는 돼 보였다. 하루종일 오가는 관광객을 집계하면 수천 명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관광버스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통행 심사를 받은 관광객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주로 광둥, 상하이 등에서 와 나선에서 1박2일, 2박3일 관광 상품을 이용하는 단체관광이 많다고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중국인들은 나선에서 카지노를 즐기기도 한다. 카지노에 중국 은행도 있어 곧바로 돈을 뽑을 수 있고, 차량을 몰고 갔다가 저당잡히고 빈 몸으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북한 쪽 원정리에 가서 당일 일정으로 수산물을 먹고 오는 관광객도 적지 않았다. 원정리의 두만강변에는 우리 수산물 시장을 연상케 하는 3층짜리 흰색 ‘원정국제시장’ 건물이 보였다. 이 건물은 지난해 말 완공돼 최근 운영에 들어갔으며 수산물을 사먹을 수 있고, 잡화를 파는 가게와 노래방 시설도 있다고 한다. 중국 쪽 강변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보니 건물 3층에 서너 명씩 모여 앉아 음식을 먹는 모습도 보였다. 이 관광상품은 처음엔 기본요금이 노래와 춤 관람을 포함해 100위안(1만6000원)이었으나 인기가 높아지자 지금은 200위안으로 올랐다. 현지에서 북한산 털게와 새우 등 해산물을 먹고 물건 사는 비용은 별도다. 한 관광객은 시장에서 700위안(11만4000원) 넘게 썼다고 했다.
혹시 취안허 세관이 잠깐 붐볐던 게 아닌지 의문이 들어 18일 오전 11시에 다시 가보니 상황은 비슷했다.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화물트럭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관광객 행렬은 여전했다. 10여분 사이 관광버스 4대에서 20∼30명씩 내려 줄지어 통행 심사를 받은 뒤 북한으로 떠났다. 관광객이 많아지자 세관 바로 앞에는 한 여행사의 출장소까지 새로 들어서 있었다.
취안허 세관 옆에는 조선족 기업인 천우건설이 대규모 취안허국제통상구 종합통관건물과 부속 시설을 짓고 있었다. 총 부지가 18만㎡에 총 건축면적이 2만8000㎡로 이 시설이 완공되면 취안허통상구의 통관 인원은 연 200만명, 통관화물은 200만t에 달하게 된다.
취안허 세관에서 러시아와 북한 땅, 동해까지 볼 수 있는 방천전망대(용호각)까지 가는 도로는 각종 중장비가 동원돼 4차선으로 확장공사를 하느라 곳곳이 패어 있었다. 훈춘 시내에도 훈춘강변 등 곳곳에 크레인이 설치돼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개발 속도가 빠른지 외곽의 아파트 단지나 상가들은 1층이 상당수 비어 있었다.
훈춘지역 아파트는 지난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 후 북·중 교류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가격이 비싼 곳의 경우 ㎡당 3000위안(50만원)에서 5000위안까지 호가가 올랐다가 요즘은 4300위안 정도에 거래된다고 한다. 훈춘시 외곽에는 한때 지었다가 팔지 못한 별장형 주택들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현지 주민은 “일단 기대감에 무작정 지어놓고 잘되면 대박이고, 아니면 계속 기다리자는 식의 투자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훈춘과 북한 간 철로를 연결시켜 훈춘을 물류와 관광, 환경을 아우르는 국제도시로 키우려 하고 있다. 현재 투먼(圖們)에서 북한 남양으로 연결되는 철로를 보수해 운영할 수도 있지만 수익성이 떨어져 나진과 훈춘을 직접 연결하는 철도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훈춘·투먼=글·사진 노석철 베이징 특파원 schroh@kmib.co.kr
대북 제재?… 北 나선 가는 세관엔 中 관광객들로 북새통
입력 2018-08-20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