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스트레스에 피싱 사기까지… 법원 “목숨 끊은 영업사원, 업무상 재해”

입력 2018-08-19 18:54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사기까지 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영업사원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유진현)은 고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장례비와 유족급여를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고씨 승소 판결했다고 19일 밝혔다.

고씨의 남편 최모씨는 2000년 A음료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최씨와 동료들은 목표치 달성을 위해 ‘가판(가상판매)’ 방식까지 동원했다. 실제 판매하지 못한 물품을 서류상으로 판매한 것처럼 기재하고 대금은 미수금으로 처리하는 식이었다. 남은 물품들은 도매상들에게 헐값에 팔아넘겼다. 차액은 대출받거나 지인에게 돈을 빌려 사비로 채워 넣었다.

최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사건도 월말 정산을 앞둔 2014년 5월 29일 발생했다. 그날 오후 최씨는 지인에게 200만원을 빌려 대부업체 대출금을 갚았다. 한 시간 뒤 판매대금이 들어오자 최씨는 앞서 돈을 송금한 사실을 깜빡하고 대부업체에 200만원을 보냈다. 업체로부터 돈을 돌려받았지만, 몇 분 뒤 해당 대부업체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문자를 받고 200만원을 다시 송금했다. 사기임을 알게 된 최씨는 사흘 뒤 목숨을 끊었다.

고씨는 공단에 장례비 및 유족급여를 청구했지만 공단은 업무상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고씨는 소송을 냈다.

법원은 고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최씨는 월말이 다가올수록 정신적 스트레스가 급속히 증폭된 것으로 보인다”며 “사기까지 당하자 스트레스가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 돼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재판부는 “최씨의 채무는 미수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했고, 사기도 그 과정에서 발생했다”며 업무상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봤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