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에선 교육부가 17일 발표한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중3부터 적용)에 대해 ‘퇴행’이라 평했다. 과도한 학습 부담이나 학부모에게 가중되는 사교육비 고통을 덜어주는 방안과 거리가 멀어서다.
‘수능 절대평가’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이번 개편안을 통해 공식 폐기됐다. 나아가 정부는 전국 4년제 대학이 수능 성적으로 30% 이상 뽑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수시모집에서 이월되는 인원까지 포함한 실질 비율은 35∼40% 수준으로 예상된다. 말이 권고지 재정 지원 등과 연계했으므로 강제나 다름없다.
‘30% 이상’ 정책은 과거로의 회귀다. 교육부는 학교 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감소를 명분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폈다. 수능의 입지를 유지하는 조치인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도 ‘없던 일’이 됐다. 최저기준이란 대학들이 수시모집 최종 합격의 조건으로 설정해 놓은 수능 등급을 말한다.
수능 준비는 한층 까다롭게 만들었다. EBS 연계율은 70%에서 50%로 낮췄다. 수험생 입장에선 EBS만으로 70점 이상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아니다. EBS 교재를 무시하기도 어려워 이중고에 시달릴 전망이다.
이번 대입 개편은 새 교육과정 취지에 맞춰 수학의 기하와 과학Ⅱ를 수능에서 빼려고 했다. 수능 범위를 적정화해 학습 부담을 줄여주면서 동시에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강화하려는 이유였다. 그러나 수학·과학계가 국가경쟁력 하락을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기하와 과학Ⅱ가 수능 과목으로 확정됐다.
문 대통령의 공약으로 원래 2022년부터 전면 시행하기로 했던 고교학점제는 2025년 이후로 연기됐다. 고교학점제란 대학처럼 고교생들이 교과를 선택해 듣고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하는 제도다. 2025년은 차기 정권이 들어서고 3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성취평가제는 내년 고1부터 도입한다. 하지만 고3 때 주로 배우는 ‘진로선택과목’만을 대상으로 한다. 공통과목이나 일반선택과목은 2025년 이후 장기 과제로 넘겼다. 진로선택과목만을 대상으로 한 성취평가제는 대입에서 영향력이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고교체제 개편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첫 단추인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부터 지지부진하다.
수능 과목 구조와 어긋난 고교 교육과정은 누더기가 됐다. 고교 1학년생이 배우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문·이과 통합이란 취지로 신설됐지만 수능 과목에서 빠졌다.
사교육을 유발하고 부모의 역할이 크다는 평가를 받아온 소논문(R&E) 활동은 학교생활기록부 모든 항목에서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수상경력이나 자율동아리 항목은 당초 교육부 방침과 달리 유지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대학에 적어 낼 수 있는 수상경력의 개수를 학기당 1개, 모두 6개 이내로 제한하는 방식을 택했다. 자율동아리 역시 대입 스펙으로 활용되면서 사교육·학부모 개입 비판을 받아 왔다. 교육부는 이런 폐해를 줄이기 위해 자율동아리는 학년당 1개로 제한했다.
하지만 수상경력과 동아리 수를 줄이더라도 부모 스펙이 학생의 스펙으로 이어지는 근본 문제는 개선됐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기재 가능한 활동의 개수를 줄였기 때문에 양질의 경험을 하기 용이한 부유층 학생에게 더 유리해졌다는 시각도 있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 공약이 백지화된 데다 35% 안팎으로 정시가 유지될 예정이어서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사교육 시장이 보장 받게 됐다는 평가다. 특히 서울대와 고려대, 이화여대 등 정시 비중이 낮은 주요 대학들이 정시 비중을 급격하게 끌어올릴 예정이어서 수능 사교육이 들썩일 것으로 보인다.
반수생(대학생 신분으로 대입 준비)이나 재수생을 겨냥한 사교육 시장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수능 비중 확대는 재학생보다 재수생에게 호재다. 수능은 과거부터 재수생 강세였다.
세종=이도경 기자
키워드로 본 대입 개편안…①강력해지는 수능 ②훗날로 미룬 고교혁신
입력 2018-08-20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