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朴이 ‘강제징용 재판거래’ 직접 지시했다”

입력 2018-08-16 21:30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뉴시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문제를 법원행정처 측과 논의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 중인 박 전 대통령이 재판거래 의혹으로 또다시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봉수)는 지난 14일 김 전 실장을 소환해 이 같은 진술을 확보했다. 김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 지시로 2013년 12월 1일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직접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공관으로 불러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의 대법원 판결을 최대한 지연시켜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소송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판결을 번복하는 방안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실장은 그 대가로 행정처에 법관의 해외공관 파견을 재개하겠다는 반대급부를 제안했다고 한다. 회동에는 당시 관계부처 수장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동석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사실이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1965년 체결된 이 협정으로 징용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시각이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2년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본 2심 결과를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이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와 확정될 경우 한·일 청구권 협정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우려를 박 전 대통령이 했다는 것이다.

직접 지시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정농단 재판을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다시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또한 검찰 수사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양 전 대법원장이 몰랐을 리 없다는 게 검찰의 인식이다.

재판거래 정황이 더 짙어지고 있으나 관련 사건에 대한 법원의 비협조는 계속되고 있다. 법원은 검찰이 요청한 ‘부산 스폰서 판사’ 사건 재판 기록의 열람 등사 요구를 특별한 사유 없이 재차 거부했다. 이 사건은 건설업자 정모씨에게 접대를 받은 문모 전 부산고법 판사의 정씨 재판 개입 행위를 ‘양승태 행정처’가 무마하려 한 건이다. 검찰은 당시 고영한 행정처장이 윤인태 부산고법원장에게 “2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검찰 등이 비위 사실을 외부에 유출할 우려가 있다”고 언급한 정황이 담긴 행정처 문건도 확보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