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17일 개설 1주년을 맞았다. 한국 사회를 쓸고 지나간 수많은 논란이 대한민국 최고 행정기관의 이름을 내건 게시판에 하루에만 수십에서 수백건 올랐다. 국민은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는가 하면 누군가를 사형시키라거나 직에서 쫓아내라는 극단적 요구도 내놨다.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는다면 직접 답하겠다는 청와대의 약속에 기성 정치와 언론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민청원 제도를 운영한 그 어느 국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수준의 화제와 관심이 쏠렸다.
국민일보는 16일 청와대 답변 기준을 충족한 청원 50개를 분석하고, 정치·사회·행정·미디어 등 각 분야 전문가에게 ‘청와대 청원 게시판 현상’의 의미를 물었다.
전문가들은 지난 1년간 한국 사회를 흔든 주요 이슈들이 모두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반영된 점을 주목했다. 올해 초 시작된 ‘미투 운동’에 힘입어 여성 인권 신장이나 보장 촉구 관련 내용이 50건 중 9건으로 가장 많았다.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인 아동·청소년 관련 요구도 7건이나 있었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를 맞아 ‘동물권’ 향상을 촉구하는 청원도 등장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초기 인기와 맞물려 청원 게시판은 사회적 이슈의 분출구가 됐고, 청원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 여론은 단숨에 정책 우선순위에 반영됐다. 이 때문에 직접민주주의 대안 성격으로 부상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국 사회의 온라인 여론을 분석한 책 ‘냉소사회’ 저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김민하씨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의 성격을 “과거 전성기를 누린 포털 ‘다음’의 청원 게시판 ‘아고라’에 현 SNS 시대의 특성이 더해진 결과”라고 평가했다. PC통신과 인터넷 토론 게시판 시절을 거치며 발달한 국내 특유의 온라인 게시판 형식에 최근 ‘주목 경쟁’에 몰두하는 SNS 문화가 합쳐졌다는 해석이다.
김씨는 “애초 정부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기대한 건 과거 다음 아고라의 역할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의 아고라처럼 기성 언론과 정치가 주목하지 않은 사건·주제를 사회적으로 환기시키고,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를 공적 논의에 진입하도록 절차적으로 보장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청원’이라는 형식은 과거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시도한 백악관 국민청원 ‘위더피플(We the People)’의 시스템과 유사하기도 하다.
그러나 기대처럼 되지만은 않았다. 단순히 관심을 끌려는 극단적 청원이 게시판을 ‘도배’하는 일이 줄을 이었다. 지난 5월 유명 유튜버 성폭력 사건에 의견을 표시한 연예인 수지(본명 배수지)를 처벌, 심지어 사형시키라는 청원까지 줄을 이었던 게 일례다. 2018 러시아월드컵 당시에는 부진했던 일부 선수를 입국금지시키라는 청원도 넘쳐났다.
김씨는 “게시판 이용자들이 유튜브 방송이나 페이스북·트위터처럼 동조나 주목을 받는 데 집중하다보니 사회적 논의 효과가 기대보다 반감되고 있다”면서 “단순히 많은 주목을 받는 걸 내용보다 중요하게 평가하는 SNS의 논리가 사회문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제되지 않은 의견이나 장난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의견을 표출하는 데 있어 청원 게시판은 표현의 방법으로 새로운 장이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본래 여론 수렴의 역할을 맡은 국회에서 제도적으로 의견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효석 박상은 권중혁 기자 promene@kmib.co.kr
[기획] 청와대 국민청원 1년, ‘정치참여 새로운 장’ 긍정 속 극단적 청원 도배 부작용
입력 2018-08-17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