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터키 리라화 폭락… 신흥국 위기 시작 아닌가

입력 2018-08-17 04:00
터키 리라화 폭락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 아르헨티나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수그러드는 듯했던 신흥국 위기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리라화는 연초 대비 40%나 급락했다. 터키 금융 당국의 시장 안정화 조치와 카타르의 대규모 투자 약속으로 시장 심리가 호전되면서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15일(현지시간) 반등하기는 했다.

하지만 터키 통화 위기가 장기화할 가능성, 다른 신흥국으로 전염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리라화 폭락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10년간 이어져온 저금리 파티의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표출되는 신호로 보이기 때문이다. 세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QE) 정책을 폈던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미국 경기 회복이 가속화되면서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경기가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미국이 ‘나 홀로 긴축’에 나서면서 그동안 저금리에 취해 달러 빚을 늘려온 ‘약한 고리’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주요 30개 신흥국의 총부채는 지난 2008년 25조 달러에서 올해 1분기 70조 달러로 3배가까이 늘었다. 시장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브라질 러시아 콜롬비아 등도 예외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다 터키 기업과 은행들의 대외 차입은 주로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계 은행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채무 불이행 시 유럽계 은행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는 얘기다. 터키의 스페인 은행에 대한 차입의존도는 2015년 3분기 이후 215억 달러에서 816억 달러로 급증했다. 더 큰 문제는 터키 정부가 이번 사태를 해결할 외교적,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드로안 터키 대통령은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를 결정하는 등 미국과 더욱 각을 세우고 있다. 금리 인상 등 통화 급락을 막기 위한 전통적 방법도 모두 거부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한국의 직접적인 터키 익스포저(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금액)는 12억2000만 달러(약 1조3779억원)로 크지 않다. 그러나 유럽계 은행들이 투자액을 회수하는 등으로 국내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소지는 충분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터키 금융위기는 1998년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발생했던 위기를 재연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이 직접적으로 신흥국 통화 위기에 전염될 가능성이 낮다고만 할 게 아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화 부채는 40%로 결코 적지 않다. 무엇보다 10년 저금리 파티의 종료로 인해 벌어진 문제라는 점에서 충격이 더 크고 오래 갈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사태가 국내 금융시장과 통화정책에 미칠 영향을 좀 더 면밀히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