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헌(53) 전 복싱 국가대표팀 감독은 ‘비운의 금메달리스트’다.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라이트미들급 결승전에서 당시 미국의 복싱 스타 로이 존스 주니어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뒀지만 석연치 않은 승리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이민까지 고민했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 한번 당당하게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링에 돌아왔다.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을 비롯해 지난해까지 복싱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했다.
그랬던 그가 다시 경기장을 찾는다. 이젠 지도자가 아닌 ‘기도자’로서다. 박 전 감독은 지난 4월 한국올림픽선교회 실무회장을 맡았다. 평창 동계올림픽 응원을 나섰던 윤덕신 여의도순복음교회 체육교구 목사가 폐암으로 나서기 어렵게 되자 직접 전면에 나선 것이다. 마지막 항암치료를 앞둔 윤 목사를 뒤로하고 7명으로 구성된 선교회 응원단은 18일 오전 인도네시아 현지로 떠난다.
출국을 앞둔 1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만난 그는 “직접 경기장에 찾아가 기도하며 응원할 생각”이라며 “폐막 때까지 매주 수요일과 주일에는 당일에 한해 선수촌 입장이 가능한 입장카드를 발급받아 종교실에서 기도가 필요한 선수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래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그는 10년 전 기독교에 입문했다. 경남 진해에서 서울로 올라온 2008년, 지인의 소개로 복음을 접한 아내 조일선(51)씨의 권유로 처음 교회에 가 본 게 시작이었다. 그는 “고난을 극복한 성경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상처 많았던 내 삶과 비슷하다고 느꼈다”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털어놨다.
평생 복싱만 생각해왔던 만큼 후배들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복싱 대표팀에도 알려지지 않은 믿음의 선수들이 많다”며 아시안게임 최초로 여자 복싱 금메달에 도전하는 오연지(28·60㎏급)와 남자 복싱 선수들인 임현철(23·69㎏급) 이예찬(24·60㎏급) 등을 소개했다. 오 선수는 지난 1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파송예배 후 박 실무회장에게 “기도해주는 분들이 많아 감사하다. 주님 믿고 링에 서겠다”는 내용의 모바일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박 실무회장은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해외의 기독 스포츠 재단과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 2년 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 응원전을 위해서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육상 100m 2관왕을 차지한 칼 루이스(57)가 설립한 ‘칼루이스스포츠재단’이 협력파트너다.
“도쿄올림픽 때문에 벌써부터 주일 예배를 드린 뒤 4시간씩 아내와 딸 주희(24)까지 영어 공부에 빠졌습니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선수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도쿄올림픽 응원전도 기대해 주세요.”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지도자서 기도자로… “파이팅·아멘 함께 외칩니다”
입력 2018-08-1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