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난 사람=김찬희 경제부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을 겨냥해 “총수의 지배력을 감안한 지분율 목표를 20% 정도로 낮추면 지배구조 개선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현재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때 총수의 지주회사 지분율을 높이 잡지 않아도 충분히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김 위원장은 검찰과 전속고발권 폐지에 합의했다고 공개했다. 오는 2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협약식을 가질 예정이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위반 등 불공정행위 사건의 경우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요청’(고발)을 해야만 검찰이 조사에 착수할 수 있는 제도다.
김 위원장은 지난 14일 서울 중구 공정거래조정원 집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연내 삼성과 현대차가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무엇인가 할 것이라는 강력한 기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주회사 전환을 예로 들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지주회사) 지분율을 SK그룹이나 LG그룹처럼 30∼40%로 올리겠다고 하면 돈이 많이 들고 시장 저항도 매우 커질 수 있다”며 “삼성과 현대차 정도의 글로벌 기업이라면 (총수가) 20% 언저리의 지분만 있어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과 갈등을 빚었던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해선 “두 기관이 합리적 수준으로 합의에 이르렀다”고 언급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공정위가 기업으로부터 담합 자진신고(리니언시)를 받을 경우 중요 사건은 1개월 이내에 그 내용을 검찰에 통보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담합 조사에 착수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공정위와 검찰이 사실상 동시에 조사를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중요 사건은 정부 입찰 담합,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은 사건 등으로 규정했다.
김 위원장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규제와 관련해 “정부의 규제 완화 시도를 은산분리 원칙 훼손이라고 보는 것은 굉장히 과장되고 왜곡된 비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2년 은행법을 개정하면서 ‘자산 2조원 이상’을 산업자본으로 규정한 기준은 낡은 인식”이라며 “현재 자산 2조원이 넘는 기업이 200개나 되는데 이 모든 기업을 은행에 단 한 발짝도 못 들여놓게 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1시간40분 동안 격정적으로 재벌개혁, 공정경제 등을 역설했다.
-혁신성장이 강조되면서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퇴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혁신성장 기조가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약화된 것으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득주도성장은 지난해부터 100m 달리기 하듯 달렸다. 반면 혁신성장은 이제 시작한 단계다. 둘의 속도를 조정하는 과정으로 이해해 달라. 공정경제는 이 두 축과 성격이 다르다. 공정경제 인프라 위에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굴러가는 것이다. 재벌개혁만 본다면 ‘포지티브 캠페인’으로 오해하지 말아 달라. 재벌개혁은 3가지를 결합해 하고 있다. 첫 번째가 현행법의 엄정한 집행, 두 번째가 재벌의 자발적 개선, 마지막이 법과 제도 개선이다.”
-법·제도 개선이라면 곧 확정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말하는 것인가.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경제민주화의 모든 것을 담을 생각은 없다. 법무부의 상법, 금융위원회의 금융통합감독법, 기획재정부의 세법 등 모든 부처가 경제민주화를 위해 협업해야 한다. 정부가 결정하지 못하고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은 최악의 정책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완화를 비판하는 분들이 계신다. 창출되는 일자리와 금융 혁신을 증명하라고 한다. 증명이 안 되면 하지 말자는 것인데, 이런 것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제라면 그건 계획경제이지 시장경제가 아니다. 낙후된 금융산업 안에서 기득권만 있고 혁신하지 않는 구조를 깨기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재벌개혁이 미진하다고 하고, 재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과도하게 경영권을 위축할 우려가 있다고 하는데.
“정부가 시민단체의 아이디어를 담는 방향으로 가면 개혁이 실패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일례로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지주회사의 자회사, 손자회사 의무지분율을 현행 20%, 40%에서 각각 30%, 50%로 올릴지를 두고 재벌개혁 의지를 판단해선 안 된다. 이 비율을 10% 포인트 올린다고 지주회사 제도가 선진화되지 않는다. 의무지분율 상향과 관련해 문제되는 것은 SK와 셀트리온 2개 그룹뿐이다. 지주회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세법상 인센티브가 가장 중요하다. 선진국 어느 나라도 지주회사 지분율을 규정한 곳이 없다. 하지만 외국 지주회사들은 세제상 혜택을 생각해 지분율 80% 이상의 완전 자회사를 만든다. 최근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반대한 가장 중요한 논거도 ‘지주회사 체제로 가면 더 많은 세제상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지배회사 체제로 가느냐’였지 않나.”
-재벌개혁 하면 아무래도 삼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재용 부회장을 만날 생각은 없나.
“(이 부회장이) 요청을 하면 만나겠다. 삼성은 다른 그룹과 비교해 독특한 면이 있다. 효성이나 한화 등 최근 여러 의미 있는 개선책을 만들어 시행한 그룹들은 사전에 공정위와 논의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삼성은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180조원짜리 투자 계획만으로 이 문제들을 다 덮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재벌개혁의 비가역적 변화가 시작됐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정말 재벌이 바뀌었는가.
“변했다. 단적인 예가 삼성과 현대차다. 2015년 삼성은 수많은 논란에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올해 현대차는 비슷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주주총회 안건을 추진하다 중간에 그만뒀다. 이제는 삼성 이 부회장이나 현대차 정 부회장 모두 과거 방식으로 주총에 밀어붙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 자체가 비가역적 변화다. 우리나라 재벌의 문제는 총수 2, 3세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가신들 문제가 컸다. 총수의 자신감을 뺏는 방식으로 조언을 하고 합리성보다는 총수 일가에게 유리한 쪽으로 계획을 짜고 이를 통해 보상을 받는 구조, 이걸 푸는 게 재벌개혁의 핵심이라고 본다.”
-검찰이 16일 공정위 전·현직 고위직을 무더기로 기소하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공정위 38년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다. 그렇지만 결의도 다지고 있다. 리더가 의기소침하고 좌절하면 안 된다. 나는 ‘멘털 갑(甲)’이다. 오는 20일 발표 예정인 공정위 쇄신 방안을 통해 공정위 개혁에 대한 진실성을 보여드리겠다. 공정위원장으로 실패하면 내 인생에 의미가 없다.”
정리=이성규 정현수 기자 zhibago@kmib.co.kr
[단독 인터뷰] 김상조 공정위원장 “재벌 문제는 총수 2,3세 문제가 아닌 주변 가신의 문제”
입력 2018-08-1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