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빠이 버 다이(더 이상 못 들어갑니다).”
경찰이 다급하게 외치며 막아섰다. 15일 오후 라오스 아타푸주 ‘세남노이 이재민 캠프’로 가는 유일한 도로의 교량이 유실됐다. 밤새 내린 폭우가 원인이었다. 세남노이 캠프는 지난달 23일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 댐 붕괴 이후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임시 거주시설이 있는 곳이다. 현재 9000여명의 이재민이 머물고 있다. 일순간 터져 나온 50억㎥의 물폭탄도 모자라 하늘에선 굵은 빗줄기가 멈추지 않았다. 설상가상이었다.
국민일보는 이날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대표회장 이영훈 정성진 고명진 소강석)-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대표회장 전계헌 최기학 전명구 이영훈) 실사단’과 이재민 캠프로 향하던 길이었다. 고작 30㎞를 앞둔 곳에서 발이 묶여버렸다. 강폭은 70∼80m가량. 얼기설기 만든 뗏목 두 척이 오토바이와 사람을 싣고 쉴 새 없이 오갔지만 일행이 타고 온 사륜구동 차량은 강을 건널 방법이 없었다.
강가에 차를 세워 놓고 건너편을 바라보던 현지인 봉사자 비 라이(40)씨는 “도리가 없다. 나흘쯤 지나면 물이 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인근 리조트 직원들로 구성된 자원봉사팀에게 식량을 전달하려고 왔다던 그는 결국 “오늘은 어렵겠다”며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올해 라오스의 우기는 유난히 길다. 6월 초부터 시작된 비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도처에 흩어져 있는 댐들이 순차적으로 방류하는 건 이제 시간문제다. 추가 홍수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강변에 서 있던 주민들 사이에선 “조만간 ‘후웨이 허 댐’이 방류할 것”이라는 흉흉한 대화들이 오갔다. 싸난 껑파(34)씨는 “이미 세까만강이 만수위인데 방류하면 정말 대책이 없다”면서 “오늘 아침 인근 대도시인 팍세로 피난을 떠난 이웃도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고립된 캠프에 물자를 공급하는 데도 차질이 생겼다. 실사단을 인솔한 박영수(가명) 선교사는 “육로가 끊겨 당장 오늘부터 헬리콥터나 소형 선박만으로 1만명 가까이 모여 있는 세남노이 캠프에 필요한 물품을 실어 날라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가로 저었다.
실사단은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수해를 입은 힐낫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있는 싸막히싸이의 짠타중·고등학교로 향했다. 이 학교는 세남노이 캠프와 떨어져 있는 유일한 피난시설로 임시 사용 중이었다. 이재민 캠프에 도착하자 정체 모를 악취가 코를 찔렀다. 200여명이 머무는 캠프엔 마침 군용트럭이 도착해 구호물자를 내리고 있었다.
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빠 당라이(31·여)씨에게 필요한 게 뭐냐고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를 찾아주세요. 여섯 살이에요. 같이 급류에 떠내려가다 손을 놓쳤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기자와 통역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재민들은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힐낫이나 타쌍짠 마을처럼 붕괴된 댐과 가깝던 곳은 아예 지도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른 곳도 별반 다르지 않은 실정이었다. 아직도 어른 허리 높이까지 진흙이 차 있거나 침수된 상태다. 논농사가 생업인 주민들이 향후 2년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주변의 공통된 전망이었다.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을 외부 지원에 의존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학교들은 이달 말, 늦어도 다음 달 초면 개학한다. 대부분 이재민들이 학교에 머물고 있다보니 서둘러 거처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끝없이 내리는 비는 복구와 사체 수습, 실종자 수색 등을 모두 더디게 하고 있다. 절망이 일상이 된 이들의 눈에선 한조각 희망도 엿볼 수 없었다.
현지 교인들도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라오스복음교단(LEC)의 집계에 따르면 33가족, 128명의 교인들이 집을 잃었다. 사고가 난 아타푸주의 교회들을 책임지고 있는 보운양 인틸런(45) 목사는 “집단생활이 길어지면서 고통도 깊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교회는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팔을 걷었다. 한교봉과 한교총은 이번 실사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시작한다. 천영철 한교봉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 있는 LEC 총회를 방문해 캄뎅 코운타판야 부총회장을 만나 긴급구호금 1만 달러(1129만원)를 전달하고 함께 기도했다.
싸막히싸이(라오스)=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물폭탄에 빗줄기… 라오스 이재민 ‘구호의 생명길’도 위태
입력 2018-08-17 00:01 수정 2018-08-17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