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금융정책의 무게추가 ‘포용적 금융’에서 ‘규제 혁신’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규제 완화를 전격적으로 천명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금융권에서는 뿌리 깊은 ‘관치금융’과 ‘금융산업 경쟁력 부진’의 그림자가 걷히는 계기가 될지 주목한다.
금융산업은 최근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면서 폭발적 성장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에선 ‘핀테크(금융과 정보기술의 융합) 혁명’이 빠르게 이뤄지는 중이다. 하지만 국내 금융산업은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 조사에서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137개국 중 74위에 그쳤다.
왜 한국의 금융산업에선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이 태어나지 못할까. 전문가들은 기존 금융회사의 혁신 부족, 국내 금융시장의 내수 독과점 구조를 꼽았다. 이어 가장 큰 걸림돌로 과도한 금융 규제를 지목했다.
국민일보가 15일 금융 전문가 10명에게 국내 금융 규제의 수준을 5단계(매우 낮음, 낮음, 보통, 높음, 매우 높음)로 나눠 설문한 결과 6명이 ‘매우 높음’이라고 지적했다. ‘높음’이라고 답한 사람도 3명이나 됐다. 유일하게 ‘보통’이라고 답한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도 “규정 자체는 보통이지만 실행 방식이 문제”라며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규정에 따라 라이선스(면허)를 내줘야 하는데 금융 당국이 깔고 앉아서 심사를 안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문제는 대통령이 일일이 챙길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촘촘한 ‘규제 그물’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 당국이 ‘한 마리의 양도 놓치지 않겠다’는 식으로 접근한다”고 꼬집었다. 규제 그물은 금융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직결된다. 글로벌 컨설팅·회계법인 KPMG 발표에 따르면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간편송금 ‘토스’를 서비스하는 비바리퍼블리카가 유일하다.
국내 금융산업의 부진은 수치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금융권 취업자 비중은 2012년 3.6%에서 2016년 3.1%로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금융산업 부가가치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6.4%에서 2016년 4.9%로 하락했다. 싱가포르(11.9%, 이하 2013년 기준)나 영국(6.6%) 미국(6.5%) 일본(6.1%)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금융회사들이 규제에 안주해온 것도 경쟁력 부진에 한몫했다고 본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업계와 관료 모두 배타성이 강하고 자기들만의 리그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입장벽이 높다보니 신생 기업이 등장하고 성장하기 쉽지 않다. 기존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등 손쉬운 영업에만 몰두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진입 규제를 낮춰 금융산업에 ‘경쟁’을 불어넣고 고용 및 소비자 중심 금융 서비스를 창출하겠다는 복안을 마련하고 있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 이후 빅데이터와 금융산업 진입 규제를 손볼 계획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7일 문 대통령이 참석한 인터넷은행 간담회에서 “그간 개혁의 장애물이 됐던 금융 당국의 행태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며 강한 규제 혁신 의지를 보였다.
이종우 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규제의 수준이 총론으로 아무리 잘 정해져도 각론으로 막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금융 당국 스스로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 힘을 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성원 양민철 임주언 기자 naa@kmib.co.kr
“철벽 금융족쇄 이번엔 풀리나” 금융전문가 10명에게 물으니…
입력 2018-08-16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