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받은 당신, 미친 듯 놀고 싶다면… 푸에르자 부르타 [리뷰]

입력 2018-08-18 07:00
넌버벌(non-verbal·말로 하지 않는) 퍼포먼스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의 한 장면. 남성 배우가 강풍과 장애물을 뚫고 가열하게 달려 나가고 있다. 2005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초연된 이 공연은 전 세계 34개국 58개 도시에서 선보여졌다. 내한 공연은 2013년 이후 두 번째다. 솔트이노베이션 제공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에서 네 명의 여성 배우들이 공중 수조 안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아래쪽 관객들을 향해 미소 짓고 있다. 솔트이노베이션 제공
클럽을 연상시키는 어두컴컴한 공연장 안.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 사람들은 연신 사방을 둘러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배우들이 나타날지 알 수가 없어서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시작된 파워풀한 퍼포먼스. 어디든 무대가 된다. 앞, 뒤, 옆, 공중, 심지어 객석 한가운데마저도.

대충 들어선 어떤 공연인지 쉽사리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흐름부터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메인 무대에서 오프닝 세션이 마무리될 때쯤 와이어에 매달린 배우들이 그네를 타듯 허공을 가로지른다. 그러다 관객 사이로 대형 러닝머신이 등장하고, 그 위에 선 남자는 각종 장애물과 비바람에 맞서 멈추지 않고 달린다.

그때 한쪽 벽면에는 은빛 커튼이 쳐진다. 와이어를 단 배우들이 그 위를 유영하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 덕에 그 배경이 마치 붉은 노을 같기도 푸른 바다 같기도 하다. 커튼이 걷히면 공중에 대형 수조가 드리워진다. 그 안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배우들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문득 수중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몽환적 분위기에 한껏 취해 있을 때쯤, 공연장 이쪽저쪽에서 간이무대들이 들어선다. 배우들은 특수 제작된 박스 더미를 부수고 춤을 추며 흥을 돋운다. 간혹 관객을 무대로 올리거나 배우가 직접 객석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공중에는 다시 거대한 막이 덮이고, 배우들은 막을 관통하는 투명 통로를 오르내리며 관객과 교감한다.

이게 웬 난데없는 전개냐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각 챕터마다 나름의 의미가 배어 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모티브로 한 공연은 슬픔 절망 승리 환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표현해낸다. 공연명 ‘푸에르자 부르타’는 스페인어로 ‘잔혹한 힘’을 뜻하는데, 이는 아마 우리네 삶에 이따금 찾아드는 고난을 일컫는 듯하다.

사실, 구태여 의미를 따져가며 관람할 필요는 없다. 그저 온몸의 감각을 깨우고 순간순간의 감상을 즐기는 것으로 족하다. 신이 나면 소리를 치고 흥이 오르면 춤을 추면 될 일이다. 그러는 사이 스트레스는 흔적 없이 사라질 테니.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이 진행되는 ‘푸에르자 부르타’에선 관객의 리액션 또한 공연의 일부이다.

수시로 무대 구성이 바뀌는 만큼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위치를 움직여가며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사방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므로 아예 젖을 각오를 하고 노는 것이 마음 편하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배우가 옆에 와 있어도 놀라지 마시길. 자연스럽게 호응해주는 모습이 ‘쿨’해 보인다. 오는 10월 7일까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FB씨어터.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