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최근 ‘물놀이 시설 입장 전 샤워 여부에 대한 국민여론’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응답자 500명 중 85.1%가 샤워를 한 뒤 입장한다는 겁니다. ‘하지 않고 입장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8.2%, ‘잘 모름’이라 대답한 비율은 6.7%였습니다. 10명 중 8명이 샤워를 한다는데 왜 수영장 물속엔 각종 이물질이 떠다닐까요.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이사는 이런 결과가 나온 원인 중 하나로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SDB)’을 꼽았습니다. SDB는 남들 보기에 부끄러운 생각이나 행동은 축소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방향으로 답변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구글의 데이터과학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도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 SDB가 여론조사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합니다. 구글 트렌드를 연구한 그는 사람들이 SDB 때문에 여론조사에선 인종, 종교, 성별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지만 포털 검색에선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는 포털 검색으로 대중의 편견이 여과 없이 노출된 사례로 2015년 캘리포니아의 총기난사 사건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국민연설 반응을 꼽습니다. 유력한 용의자로 이슬람계 인물의 이름이 거론되며 여론이 격앙되자 오바마 대통령은 이슬람포비아 대신 관용의 자세를 갖자고 연설합니다. 명연설임에도 사람들은 연설 내용과 상반된 반응을 보입니다. 연설 중 포털 내 ‘이슬람교도를 죽이자’는 검색은 3배로 늘었습니다.
이런 추세는 2달 뒤 연설 내용을 바꾸면서 점차 달라집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관용 대신 이슬람계 미국인이 사회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말했습니다. 시카고의 마천루 디자이너 가운데도, 나라 안팎을 지키는 군인 가운데도 이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후 포털 내 이슬람 혐오와 관련된 내용의 검색률은 감소했습니다.
이를 보며 한국교회의 양성평등 현실을 떠올렸습니다. 현재 일부 교단은 성경 해석의 이유로 20여년간 여성 목사 안수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인정한 교단도 총회 리더십에 여성이 진출한 사례는 극소수입니다.
각 교단 여성 교역자들은 매년 가을 교단 총회 때마다 여성 목사 안수 및 교단 내 양성평등 이슈를 놓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성경의 일부 문구를 구실 삼아 동등한 피조물로 창조된 남녀를 차별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교회 사역에 주로 동원되는 여성에게 희생만 강조하고 발언권을 주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요구는 대체로 교단 총회에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양성평등 실현은 여전히 요원한 걸까요. 오바마의 전략에서 길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그가 관용을 말하며 모든 차별을 거부하라고 주문할 때 이슬람에 반감을 느낀 이들은 연설을 듣고 더 크게 분노했습니다. 이후 이슬람계 미국인도 국가의 소중한 일원이라 말했을 땐 혐오감이 줄었습니다. 이처럼 교회 내 양성평등에 있어서도 당위를 내세우는 것에 머물지 않고 관점을 달리해 인식 자체를 바꿔나가면 어떨까요.
인식 전환이 필요한 이들은 교단 총회의 총대뿐만이 아닙니다. 한국교회 성도 전체가 교회 내 여성의 역할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양성평등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해야 합니다. 다 알고 다 공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깨어있다고 하는 성도들 중에서도 문제의식이 표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곧 주요 교단 총회가 다가옵니다. 올해도 여성안수뿐 아니라 다양한 양성평등 이슈가 등장할 것입니다. 올해 총회에선 교회 여성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돼 한국교회가 대중의 인식 속에 ‘남녀 모두가 평등한 교회’로 남길 기대해봅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양민경 기자의 응답하라 교회언니] 편견을 바꾸는 힘
입력 2018-08-17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