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독립 도운 나라 직접 와보니 가슴 벅차”

입력 2018-08-15 04:01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을 도운 미국인 조지 애시모어 피치씨의 아들 로버트(오른쪽)씨와 손자 데이비드씨가 광복절 전날인 1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아버지는 핍박받는 이들을 외면할 수 없다고 했다. 막내아들 결혼식을 뺀 여섯 남매의 졸업식과 결혼식을 모두 놓치면서까지 아버지는 타국 땅에서 낯선 이들을 도왔다. 목사이자 신학자였던 그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일본군의 만행을 두고만 볼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의 편지가 일본군의 감시를 뚫고 도착하는 건 두어 달에 한 번 정도였다. 편지에는 아버지가 겪는 고난이 적혀 있지 않았다.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지, 나쁜 일은 없었는지 가족의 일상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가 독립을 도운 나라에서 어느새 백발이 다 된 아들은 편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미국인 조지 애시모어 피치(1883∼1979)씨의 아들 로버트(90)씨가 손자 데이비드(61)씨와 함께 국가보훈처의 안내로 처음 한국을 찾았다. 로버트씨는 광복절 전날인 14일 국민일보와 만나 “아버지는 언제나 억압받는 이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한국의 독립을 도운 것도 그래서였다”고 회상했다.

그의 아버지는 1932년 상하이에서 윤봉길 의사 의거 후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 일행에게 숨을 곳을 제공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도산 안창호 선생 석방 운동에 나섰으며 중국 정부에 한국 임시정부를 승인해 달라고 호소했다. 로버트씨는 상하이에서 아버지가 김구 선생 일행을 숨겨줬을 때 함께 있었다.

아버지는 1945년 광복 후 YMCA의 총간사를 맡아 한국에 2년간 머무르며 재건을 도왔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1979년 캘리포니아주의 자택에서 96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한국 정부는 아버지에게 문화공로훈장과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지난 1월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매우 엄하면서도 스스로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목사이기도 했던 아버지는 총칼을 앞세운 일본군이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을 학대하는 걸 견딜 수 없어했다. 로버트씨는 “일본군의 만행은 아버지의 신앙에 비춰서도 옳지 못한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타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아버지는 로버트씨의 어린 시절 대부분을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그는 그리도 엄했던 아버지가 편지에서 ‘너무 보고 싶다’고 했던 문구가 아직 기억난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아버지는 대의를 위해 인생을 바쳤다”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와 떨어져 있어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