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안희정’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정치인 안희정’은 용서받지 못했다. 친정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14일 무죄 판결을 외면했고, 다른 정당들은 일제히 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여론은 오히려 더 싸늘해졌다.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에게 내려진 정치적 사망 선고는 변하지 않았다.
지난 3월 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폭로가 제기되자 안 전 지사를 즉시 출당·제명시켰던 민주당은 이날 아무런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안 전 지사를 제명한 것은 법리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도의적 판단이었다”면서 “더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입장이 없는 게 입장’이라며 말을 아꼈다. 정치인 안희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1심 무죄 판결로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다.
야당은 사법부의 판단을 강하게 비판했다. 자유한국당은 “미투 운동에 대한 사형선고”라며 “안 전 지사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은 여성에게는 뻔뻔하게도 사과 한마디 남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도 “법적으로 무죄가 됐다고 정치·도덕적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안 전 지사에 대한 정치·도덕적 책임은 심대하다”고 했다. 정의당과 민주평화당도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질타했다.
1심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안 전 지사가 정치적으로 재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한 여성 정치인은 “법리를 떠나 ‘불륜’ 이미지가 남아 도덕적 타격이 크다. 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안 전 지사가 정계 복귀를 시도할 경우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며 “그가 당에 돌아올 일도, 당이 그를 받아줄 일도 없다”고 말했다.
고려대 학생운동권 출신인 안 전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로 일하며 ‘친노의 적자’로 불렸다.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친노는 폐족(廢族)”이란 말을 남기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2010년 충남지사로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문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도 꼽혔다.
하지만 지난 3월 수행비서 김지은씨가 안 전 지사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자 지사직에서 사퇴하면서 정치 활동을 일절 중단했다. 안 전 지사는 폭로 직후 SNS에 “정말 죄송하다.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용서를 구한다”는 입장문을 올렸다. 이후 법정에서는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며 무죄를 주장해 왔다.
김판 김성훈 기자 pan@kmib.co.kr
‘피고인 안희정’은 무죄, ‘정치인 안희정’은 용서받지 못했다
입력 2018-08-15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