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왜 천사 얘기가 가득할까.” 돈벌이에 급급한 의사 스턴은 난민 소년 아리안과의 만남을 호기로 여기며 중얼거린다. 스턴은 열악한 환경의 난민 수용소에서 근무하는 의사다. 과실로 의료사고를 낸 후 난민의 돈을 받아 뒷거래를 하며 재판 보상비용을 버는 중이다. 어느 날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성경책을 나눠 주는 두 사람을 만난다. 안 읽는다고 거부하면서도 그는 성경책을 받는다. 우연처럼 그는 같은 날 허공을 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아리안을 만난다. 스턴은 아리안이 자신을 위해 나타난 천사라고 생각한다.
아리안은 아버지와 함께 헝가리로 밀입국하던 중 총에 맞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중력을 거슬러 공중에 떠오르는 놀라운 능력까지 생겼다. 기적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아는 스턴은 아리안을 난민 수용소에서 빼돌리고 적극적으로 돈벌이에 나선다. 한편 아리안에게 총을 쐈던 경찰 라슬로는 자신의 실책을 덮기 위해 두 사람을 쫓고 급기야 난민 소년에게 테러범이라는 누명까지 씌운다.
유기견들의 생존 이야기를 다룬 ‘화이트 갓’으로 주목을 받은 헝가리 대표 감독 코르넬 문드럭초(Kornel Mundruczo)는 이번에 SF 판타지 장르로 유럽 난민문제를 풀어내는 낯선 조합의 영화를 내놨다. ‘주피터스 문(Jupiter’s Moon)’, 즉 목성의 69개 위성 중 갈릴레오가 발견한 ‘유로파’라는 위성의 가능성을 지금 유럽 현실에 빗대어 영화로 만들었다. 특히 유럽의 정신적 전통인 기독교적 세계관에 비춰 서사를 이끌어 간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얼마 전 독일 의회 연설에서 유럽의 적극적인 난민 수용을 촉구하며 “이 도전이 유럽연합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난민, 그들이 누구인가’를 따져보기 전에 ‘난민을 어떻게 얼마만큼 용인할 수 있는가’라는 타자에 대한 수용의 폭과 가능성이 유럽의 미래를 바꾼다는 의미다. 통찰력 있는 한 지도자의 목소리는 그대로 한국의 현실에도 적용된다. 난민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으로 가득 찬 목소리는 타자에 대한 이기적이고 편협한 시야를 가감 없이 폭로하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문드럭초 감독은 메르켈 총리와 비슷한 관점으로 유럽의 난민 문제에 접근한다. 아리안을 천사로 여겼지만 그저 이익을 위해 이용할 목적뿐이던 스턴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방문한 까닭을 생각한다. “사람들은 위를 쳐다보는 것을 잊어버렸다.” 스턴은 자기 눈높이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머리 위에 항상 하늘이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아리안이 왔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 사익만을 좇던 스턴은 하늘의 뜻, 공의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그네에 대한 환대’는 구약의 유대적 전통 이래 신약에서도 강조되는 대표적인 이웃사랑의 모습이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히 13:1∼3)
창세기에 세 천사를 극진히 대접한 아브라함의 환대도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환대(hospitality)’의 어원에서 ‘적대(hostility)’란 의미를 함께 찾아냈던 것처럼 두 단어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우리는 그들이 진짜 천사인지 의심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그들이 천사인지 분별한 후에 대접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가 아브라함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가 아닌지 스스로 성찰해봐야 한다.
성경 속 천사는 아브라함 집에서 환대를 받은 후 축복을 베풀고 곧이어 소돔과 고모라에 가서 재앙을 내린다. 소돔 성에 들어가 롯의 집에 있는 두 천사를 주민들이 어떻게 위협했는지 떠올려 보자. 천사의 방문과 함께 멸망 당한 소돔 성 사람들에게 두 천사가 과연 천사처럼 보였을까. ‘누가 천사인가’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를 ‘천사처럼 대접할 수 있는가’가 더 본질적 문제다.
<영화평론가>
[임세은의 씨네-레마] 우리는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다
입력 2018-08-17 17:51 수정 2018-08-17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