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청년의 가출

입력 2018-08-14 00:00

취업을 앞둔 4학년 남학생이 힘들어 보여 얘기를 나눠봤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교회 장로인 아버지는 아침마다 밥상 앞에서, 아들이 H기업에 꼭 취업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식사하는 동안에도 지금까지 아버지가 뒷바라지를 해주었으니 이번 학기에 꼭 취업을 해야 한다고 당부를 하곤 했다. 무자비한 취업 경쟁과 아버지가 주는 스트레스로 아들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학교 가까운 곳에 방을 구해 따로 지내보라고 했다. 가출을 권한 것이다.

1000만명을 자랑하던 교인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소속 교인 수가 271만명이었던 예장통합 교단의 경우 최근 1년 사이에 1만6500여명이 줄었다고 한다. 전체 교인 중 청장년 등록교인이 20명 이하인 교회는 36.4%나 된다. 주일학교 문을 닫는 교회도 늘고 있고 청년 교사와 찬양대원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필자가 지도하는 기독교 동아리도 신입생 확보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직장신우회도 마찬가지다. ‘뚝, 뚝, 뚝!’ 곳곳에서 대(代)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날까.

첫째, 교회가 거룩한 감동을 주지 못해서다. 초창기 한국교회에는 젊은이들이 경쟁하듯이 몰려들었다. 교회 바깥에 없는 새로운 지식과 문물, 그리고 순수한 진리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회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회개와 용서, 거룩한 삶, 정의와 사랑을 중시하는 공동체였다. 설교자의 준엄한 꾸짖음은 오히려 청년들을 감동시켰고 그들이 온전히 예수를 따르게 했다. 그들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며 우리 사회와 교회를 오늘처럼 부흥시켜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교회에 죄인을 구원하는 말씀이 아니라 개인의 성공을 기원하는 기복 메시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말씀하시지만 설교자들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랑과 복만 강조하기 시작했다. 쓴 치료제는 빼고 달콤한 보약만 주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쇼맨십 능한 스피치 기술자나 연예인형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인기 경쟁에 나섰다. 예수님보다 목사님을 만나려는 교인들이 몰려들면서 교회 규모는 커졌고 목사 우상화가 시작됐다. 복음을 왜곡시킨 일부 목회자들은 교회의 사유화, 헌금 횡령, 성폭력 등으로 거룩한 교회를 세속적 종교집단으로 타락시키며 교인들을 농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작지만 바르게 성장하는 풀뿌리 같은 작은 교회들도 삼켜버렸다. 이러한 모습에 젊은 세대는 교회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교회 지도자들이 최근의 국정농단에 침묵하고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면서, 특정 정치집단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청년들은 기성세대와 높은 담을 쌓기 시작했다. 나아가 세상과 다를 바 없이 타락한 종교 집단에 속해 있는 자신을 창피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고등부 청년부에서 성장하며 교회를 가까이 지켜본 청년들은 교회 가출을 시작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교회에 안 나가는 가나안 교인이 23%에 이른다.

둘째, 교회가 청년들의 담론 읽기에 실패해서다. 소통은 상대방의 상태, 관심사, 필요를 아는 데서 시작된다. 청년들은 앞으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일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갈지로 매우 고민한다. 아르바이트, 군 입대, 직업 선택과 취업, 성적 유혹과 혼전 순결, 배우자 선택과 결혼, 인간관계, 무엇보다 음주 흡연 동성애는 교회 청년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고민거리다. 이런 이슈에 대해 교회 바깥에서는 매우 급진적인 답을 제시하는데 교회는 해답은커녕 이들의 담론조차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적인 고민들은 제쳐놓은 채 찬양과 성경공부, 기도모임만으로 교회가 청년의 삶을 바꿔줄 수 있을까. 청년의 삶과 거리가 먼 젊은 목회자의 개인기로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교회는 청년들에게 봉사를 강요하고 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에너지가 고갈된 이들의 아르바이트 시급을 생각해봤는가. 교회는 청년을 봉사자가 아니라 목회의 대상으로 여겨야 그 영혼을 살릴 수 있다.

자식이 가출하는 집안에 미래는 없다. 청년이 가출하는 교회도 그렇다. 교회가 청년 가출을 막기 위해 당회를 아무리 열어봐야 소용이 없다. 담당 목회자를 아무리 채근해봐야 소용이 없다. 교회 내 타락한 지도자들이 더 이상 부끄러운 짓을 멈추고 거룩한 감동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 후에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청년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너희를 위해 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가.” 결국 거룩함의 회복과 소통이다.

이의용(국민대 교수·생활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